개인적 일로 대전에 1박 2일로 다녀오게 되었다. 다녀오는 길에 세종에 계시는 지인분이 모델 3을 구입하게 되시어, 동승해볼 기회가 있었다. 모델 3의 성능과 여러 특징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 곳은 무척 많으니, 여기서는 이에 대해서 다루지는 않으려고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몇몇 느낀 점들은
- 기존 내연차 중심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역시나 전기차에 대한 포커스를 잘못 잡고 있다 (최근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기존의 글 참고).
- 승차감이 무척 부드럽고, 차량의 거동이 아주 잘 정제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아이오닉과 비교하면 2 단계 정도 고급인 하체).
- 이 차가 니로 처럼 천장이 좀 더 높고, 공간이 조금만 더 넓어지면 그 차가 내 다음 차가 되어도 좋겠다. 로 정리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만으로 3년 5개월차가 된 아이오닉 EV를 보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모델 3을 반드시 사고 싶다! 하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지는 않았다. 현금 박치기로 구입을 한다고 하면, 총 비용을 감안할때 아이오닉에서 모델 3 듀얼 모터로 갈아타는데 4,000만원 정도가 들 것으로 보였는데, 이만큼의 돈을 모으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그 만큼의 돈이 있다면 투자하고싶은 것들이 무척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저 3가지 포인트는 상당한 시사점이 있어서, 이에 대하여 이 포스팅에서는 간략히 정리해 본다.
1. 모델 3의 인테리어 컨셉 – 기존 럭셔리 브랜드와의 격차가 확대된다.
모델 3은 외부 규격은 준중형 크기, D 세그먼트에 해당하며, 전장 4,694mm x 전폭 1,849mm x 전고 1,443mm 로, 아반떼가 전장 4,620mm x 전폭 1,800mm x 전고 1,440mm 보다 약간 큰 정도이며, 신형 쏘나타(DN8) 의 전장 4,900mm x 전폭 1,860mm x 전고 1,445mm 보다 길이는 확실히 짧으며 폭은 비슷하다. 즉, 밖에서 봤을 때 무척 큰 차는 아니며, 요즈음의 쏘나타 처럼 차가 커서 몰고 다니거나 주차하는 것이 약간 힘들다는 느낌이 들 차도 아니다.
그러나 그 내부는 시원하고 넓은 느낌이 아주 좋다. 계기판이며 여러가지 스위치며 송풍구를 모두 없애버린 결과 심리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넓어 보인다. 또한 센터 콘솔은 상당히 거대한 수납 공간으로, 웬만한 잡동사니를 다 넣어버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깔끔한 거실/라운지의 느낌이 든다.
아래의 사진으로 상당히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중-대형 SUV 인 넥소의 인테리어와 모델 3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명확한 차이를 느낄수 있었다. 실제로 넥소를 시승하였을 때, 중-대형 SUV 인데 무척 좁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아직까지 오토파일럿은 개선될 부분들이 많고, 전자식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컨셉은 가끔은 무척 큰 문제를 (불이 났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운행시 운전자의 개입이 점차 줄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추세에서 차량 인테리어를 휴게 공간처럼 디자인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는 지난 1개월간 아이오닉을 1,000km 가량 주행 하면서, 대부분의 구간이 평균 속력 30km/h 미만의 간선도로 및 시내 정체구간 주행이었는데, 사실 이 구간들은 웬만한 TJA 면 다 커버가 가능한 구간이었다. 대부분 정체 구간에 붙들려 시간을 보내는 현실에서, 보통의 운전자들에게 운전대를 잡고 차를 컨트롤 하는게 피할 수 있으면 더 좋을, 노동에 가깝지 않을까 싶고, 이처럼 차량의 잡일은 차가 알아서 하고 운전자는 쉴 수 있게 해주는 디자인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운전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차량을 통제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인 스포츠카는 이럴 수가 없는데, 따라서 아래의 타이칸의 인테리어는 운전자를 중심으로 빡빡하게 셋팅이 되어 있다. 스포츠 드라이빙은 원래 이래야 하는 것이니깐, 포르쉐의 성격상 아래 인테리어가 맞겠지만,수도권의 정체 속에서 일생동안 고통을 받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큰 메리트가 아닐수도 있겠다.
테슬라는 오토파일럿과 자동화에 집중하면서, 1-2세대 정도 (5-10년) 진화되면 점차 레벨 3-4의 차량에 가까운 형태의 전동화 차량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메이커가 되지 않을까 싶고, 아마도 기존 차량 메이커들 (요즘 열심히 감원과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과의 격차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2. 부드러운, 정제된 하체 vs. 성능
정말 이것도 어쩔수가 없다. 테슬라의 회사 밸류에이션에 거품이 엄청나지만 스크래치에서 시작해서 최소한의 요소를 갖춘 ‘전기’차를 개발하고 양산한 회사가 테슬라 뿐인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안타깝게도 전기차 전용 모델인 I-pace 같은 차들조차 모델 3이 주는 하체의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배터리와 모터를 바닥에 깔고 그 다음 유저 경험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서 나머지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무척 다양한 종류의 차량을 시승하다 보니 요철을 넘을때의 느낌, 특히 선회나 가-감속을 하면서 요철을 통과할 때의 느낌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느낌이 아주 좋았다.
급격한 가감속과 횡가속 시의 거동은 조만간 다른 차로 직접 확인해 보아야 하겠지만, 이 역시 흠을 잡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MT 에 따르면 (https://insideevs.com/news/339734/motor-trend-releases-test-data-on-tesla-model-3-performance/) 퍼포먼스 버젼의 스키드패드가 0.95g, 1/4마일은 11.8초, 60마일 가속은 3.2초, 8자 테스트는 24.3 초로, 정말 흠 잡을데 없는 수준이다.
전동화 차량들이 안락함도 추구하면서 동시에 스포츠 성능은 이렇게 극단적인 엔벨롭을 보여주면서, 내연 차량의 가격, 유지비, 썩 두드러지지 않는 퍼포먼스, 게다가 퍼포먼스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안락함을 생각해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찬다.
3. 조금만 더 넓고 수납 공간이 많으면? – 모델 Y 를 기다리고 싶다.
넓고 시원한 실내, 계속 진화하는 오토파일럿을 보다 완벽히 누리기 위해서는 크로스오버 형상이 좋다. 지난 3년 넘게 아이오닉을 유지하며, 출장을 가서 노숙을 하다가 차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끔찍한 정체 구간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거나, 차를 세워놓고 충전을 하며 잠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악기 연습을 하거나, 메일을 처리하거나 글을 쓰거나…
모든 상황에서 아이오닉의 운전석의 왼쪽으로 반뼘, 천장 쪽으로 한뼌 정도의 공간만 더 있다면 정말 쓸모가 많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해 준 것이 니로인데, 니로는 나름의 문제점이 있다 – 못생겼고, 트렁크가 앞뒤로 좁고, 운전석에 앉아보면 엄청 넓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그리고 꽤 비싸다.
아마 2021년이면 한국에서 모델 Y 를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대략 실내공간과 성능은 포르쉐 마칸을 그냥 씹어먹을 수준이 될 것 같고, 이 때 즈음 크로스오버 형태의 전기차 선택지 중에서 무언가를 구입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현대차 주주의 입장으론, 현대차에서 그 전에 자율주행 기능이 상당히 발전된 크로스오버 형태의 전용 전기차 모델을 발매해주기를 좋곘지만..
결론적으로, 정말 잠깐 얻어타본 모델 3이었지만, 무척 많은 생각이 드는 경험이었다. 조만간 모델 3을 조금 길게 직접 운행해 보고, 더 자세한 포스팅을 남겨야 할 것 같다.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