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아는 쏘렌토 MQ4의 공식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공개했다. 쏘렌토는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기아의 중형 SUV다. 특히 쏘렌토가 속해있는 중형 SUV 세그먼트는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문이기도 하다. 20세기 말부터 GDP 지수는 가파르게 성장했고, 레저활동이나 패밀리카 용도로 적합한 대중형 SUV의 수요가 폭증했다. 모든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참여하는 시장이다. 물론 현대자동차 그룹의 점유율 잠식은 피해 갈 수 없었지만, 현대자동차의 싼타페가 기아의 쏘렌토보다 판매량이 눈에 띄게 저조했던 기록은 이례적이다.

최근에는 신규 플랫폼과 디자인을 구현한 싼타페 풀체인지 ‘MX5’도 공개된 바 있다. 가격 인상 또한 예상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쏘렌토의 잠재 고객 중 다수가 이탈할 우려가 생겼다. 쏘렌토의 실적 호조가 디자인으로부터 비롯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이번 쏘렌토의 페이스리프트는 시기도 시기지만, 싼타페 풀체인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변화를 택할 필요가 있었다. 또 브랜드 정체성을 새롭게 다져가는 시기이기도 해서 쏘렌토 페이스리프트는 많은 변화를 거쳐 탄생했다. 이미 꾸준한 인기를 누리던 쏘렌토 MQ4의 대대적인 변화를 설명했다. 제4세대 쏘렌토 페이스리프트의 디자인을 자세히 분석해 본다.

전기형 쏘렌토 MQ4는 ‘정제된 강렬함’이라는 디자인 언어로 기획되었다. 원래 SUV의 시초가 다목적 자동차였던 만큼 세단에 비해서는 투박하고 커 보이는 느낌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전 세대의 크로스오버들은 되도록 도시적인 스타일링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고, 얼마나 매끄러운 디자인을 구현하느냐가 완성도의 척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트렌드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SUV 고유의 ‘강인함’ 내지는 ‘듬직함’을 강조하며 제품성이자 세일즈 포인트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 SUV를 선택하는 소비자들 중 일부는 안전성과 기동성에 매력을 느낀 경우다.

정제된 강렬함은 직선으로부터 기인했다. 잘 정돈된 직선은 ‘정제’라는 표현 그 자체의 시각적 이미지를 지닌다. ‘강렬함’은 당시 기아가 추구하던 ‘타이거 페이스’ 패밀리룩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제된 직선과 강렬한 프런트 마스크는 정통 SUV의 터프함을 연출해 준다. 당시 기아의 SUV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했던 ‘텔루라이드 컨셉트’를 모티브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굵직한 선과 거대한 면을 앞세우는 단순한 폼팩터는 듬직했고, 직선 위주의 캐릭터 라인이나 스타일링은 더욱 단단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가한다. 타이거 노즈 그릴, LED 헤드램프 등의 픽션이 기아의 타이거 페이스를 구현했다.

쏘렌토 MQ4의 페이스리프트는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이라 하는 신규 디자인 철학이 적용되었다. 앞서 쏘렌토의 디자인 변화는 경쟁 모델의 풀체인지로도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했다. 하나, 변화의 여지가 충분하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는 정확한 가이드가 없다. 결과적으로 쏘렌토의 페이스리프트는 기아가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SUV만의 패밀리룩을 정확히 뒤따르게 된다. 이른바 세로형 헤드램프 디자인이다. 이를 두고 기아의 디자인팀은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이라고 설명한다. 오퍼짓 유나이티드의 다섯 번째 속성이다.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은 근본적으로 SUV를 위한 디자인 철학이다. 세로 형태의 헤드 램프는 차체를 더욱 높아 보이게 하며, 경우에 따라 차폭까지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앞서 SUV 디자인의 트렌드는 도심화를 거쳐 다시금 레트로 스타일로 회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UV의 정통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차체가 더욱 크고 듬직하게 보이도록 유도하는 건 당연하다. 기아의 새로운 SUV 전용 패밀리룩은 같은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차세대 디자인 철학이 추구하는 간결한 면처리나 직선 위주의 스타일링 기법이 이미 쏘렌토의 전기형부터 시현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패밀리룩 요소인 ‘스타 맵 클라우드 라이팅’은 ‘ㄱ’자의 형태로 차체 양 끝 단과 상단부의 테를 세우고 있다. 사실 보행자 안전성, 공기저항 등의 이유로 온전히 박스 형태의 디자인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쏘렌토 페이스리프트에 적용된 DRL 형상은 테를 강조하면서 전체적인 윤곽선이 직선으로 잡혀있는 형태처럼 보이도록 유도한다. 앞서 세로 형태의 헤드램프는 경우에 따라 차폭이 넓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쏘렌토는 긍정적인 예시다. 헤드램프의 폭이 상당히 얇다. 덕분에 라디에이터 그릴의 크기가 더욱 옆으로 확장될 수 있었고, 전체적인 프런트 마스크가 넓어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은 여전히 기아의 타이거 노즈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즉, 그릴 프레임 중심부가 움푹 들어가 있는 형상은 브랜드 디자인 헤리티지로 꾸준히 남아있을 듯하다. 너무 복잡하지 않게 밋밋함을 덜어내기 좋다. 특히 직선 위주의 디자인에 제격이다. 범퍼의 디자인은 전기형의 레이아웃을 유지하면서, 양측 에어커튼의 면적을 줄였다. 중심부 에어 인테이크의 폭을 넓히면서 대담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두꺼운 프런트 에이프런에는 양각의 패턴이 있어서 강인한 인상이 살아난다. 비슷한 감성으로 보닛의 중심부를 파워돔 라인처럼 돌출시키기도 했다.

페이스리프트인 만큼 측면 디자인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반대의 시각에서 보면 헤드램프의 변화 하나만으로 큰 차이가 될 수 있다. 스타 맵 클라우드 라이팅은 보닛의 끝부분, ‘에지 라인’을 감싸는 형태이기 때문에 보닛이 더욱 길게 보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옆에서는 세로형 헤드램프와 함께 더욱 확실하게 전고를 강조해 준다. 전반적인 실루엣이 높고 직선적이다. 프런트 펜더와 도어패널을 연결하는 가니시 액세서리는 전기형과 동일하다. C필러를 장식하는 가니시 몰딩과 로커패널의 장식 등 기아는 세련미를 연출하기 위해 알루미늄 소재를 적극 활용한다.

전체적인 비율 또한 준수하다. 전륜구동 자동차다 보니 상대적으로 프런트 오버행이 길긴 하지만, 보닛과 캐빈 룸의 길이 비율이 꽤나 역동적이다. 또 윈도우 면적에 비해 측면 도어 패널의 높이가 훨씬 길고 두텁다. 듬직함을 주는 요소다. 특별한 캐릭터 라인 없이 면의 굴곡을 이용하여 볼륨감을 살린 점은 앞서 언급한 정통 SUV의 투박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차체 하부를 감싸는 두터운 스키드 플레이트 또한 SUV의 감성이다. 물론 실용성도 고려한다. 새롭게 디자인된 휠은 기하학적인 패턴이 돋보인다. 마치 쐐기형으로 꺾여 있는 D필러 윈도우 라인은 쏘렌토만의 프로필, 즉 헤리티지라고 이해할 수 있다.

후면 디자인의 변화는 비교적 크지 않다. 사실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한 변화라기 보다, 변화를 위한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즉, 신차효과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신형 싼타페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다방면에서 ‘새롭다’라는 느낌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테일램프를 하나로 연결했다. 단순히 하나로 연결했다고 표현하기도 모호하다. 기존 쿼드램프 형상은 유지하되 상단부분만 연결한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LED 그래픽이 적용될 수 있었고, 기존 쏘렌토 MQ4와의 차별화는 확실해 보인다. 주관적인 기준이긴 하다. 차이만 따지면 범퍼 가니시 형상의 변화가 더 큰데 크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아니다.

전체적인 디자인을 분석하자면 주로 깊은 음영과 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어 펜더를 강조하는 숄더 라인이 뒷유리 창을 자연스럽게 감싼다. 뒷유리 상단에는 거대한 크기의 립 스포일러를 적용했고 넓은 그림자가 형성된다. 이 그림자에는 와이퍼를 숨기는 디테일이 있다. ‘히든 타입 와이퍼’다. 한편, 숄더 라인을 경계로 트렁크 리드는 선명한 면의 분할이 나타난다. 음영 대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차체 볼륨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참고로 범퍼와 테일게이트에 단차 같은 라인이 첨부된 건 테일게이트 버튼을 구성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겠다.

인테리어 디자인 테마는 ‘경계가 없는 이어짐’이라고 한다. 디지털 친화를 거치고 있는 승용차의 전형적인 인테리어다. 대시보드를 선반형으로 구성했고, 현대자동차 그룹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체계 CCNC를 적용했다. 실내 구성이 간결해지고, 버튼마저도 사라지는 추세인 만큼 UI 디자인의 변화는 효과가 크다. ‘경계가 없는 이어짐’은 센터페시아를 관통하는 에어벤트 라인을 지칭하는 듯하다. 원래 쏘렌토의 인테리어는 기능적 감성을 살렸다 하여 세로로 자리 잡은 에어벤트가 특징이었다. 쏘렌토만의 개성으로 느껴질 수는 있었으나 심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크게 뛰어난지는 의문이었다.

반면 쏘렌토 페이스리프트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심미성에 집중한 바가 크다. 그렇다고 기능성을 희생시킨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조작감 측면에서 터치 전환식 패널보다는 버튼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기존 쏘렌토의 다이얼 기어는 그대로 적용했다. 기어노브 주면에는 각종 주행장비 조작 버튼과 컵홀더가 있고, 수납함은 어퍼 커버로 깔끔하게 마감한다. 대시보드 양 끝 에어벤트와 무드램프가 내장된 도어트림 가니시도 쏘렌토의 개성으로 남았다. 최근 승용차의 실내 디자인 트렌드는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고, 쏘렌토의 변화 또한 전형적이다.

싼타페의 풀체인지로 쏘렌토 페이스리프트의 미래가 불안정해 보였다. 실제로도 판매량 위축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실적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예상보다 큰 폭의 디자인 변화를 거쳤다. 다행히도 도전적인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걸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기아의 쏘렌토가 대한민국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올 수 있었던 건 특별히 모나지 않게 무난한 스타일링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라는 사견이다. 쏘렌토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또한 ‘신차’라는 느낌은 확실하지만 너무 특징적인 디자인은 아니다.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에는 이미 EV9, 모닝, 레이 등의 신차를 통해 익숙해져 왔기도 하다.

기아의 SUV, RV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을 처음 제시했던 차종은 ‘스포티지 NQ5’였지만, 복잡하고 과감한 디자인은 너무 크로스오버의 성격이 짙었다. 이후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을 주제로 하는 굵직하고 보수적인 패밀리룩은 ‘SUV’ 의 본질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더욱이 쏘렌토의 아이덴티티에 잘 부합하는 디자인이었다. 당연하다. 제4세대 쏘렌토는 SUV의 강인함을 되살리고자 했던 기아의 초석이었고, 기아자동차의 리브랜딩과 함께 혁신성을 갈고닦았을 뿐이다. 디자인의 변화는 크지만 본성은 그대로이다.

 

 

유현태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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