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기아는 EV 시리즈의 신규 라인업 ‘EV3’를 공개했다. 현대자동차의 1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소형 SU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중국 시장에 먼저 공개되었던 준중형 전기 SUV EV5처럼 전륜구동을 표준으로 한다. 동급 소형 SUV와 달리 차체 강성과 차음 성능을 더욱 보강하고, 첨단 사양과 고급 편의 장비를 추가하여 제품성을 강화한다. 무엇보다 ‘보급형 전기차’를 지향했으면서도 NCM 소재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점이 대목이다. 염가형 전기차를 앞세우는 중국 전기차 산업과 대조적으로, 기아는 ‘고급화 전기차’라는 가치를 꾸준히 이어나가고자 하는 듯 보인다.

지금도 기아는 소형 SUV 세그먼트에 속하는 ‘니로 EV’를 시판 중이다. 하이브리드 전용으로 개발된 니로 SG2를 순수 ‘전동화’한 모델이다. 통상 전동화 전기차의 장점은 ‘가격’이어야 하지만, 니로 EV는 최적화된 제품성도 그다지 매력적인 가격대도 아니었다. 즉, 소비자는 보다 최적화 전기차를 구매하거나 더 익숙한 내연기관 모델을 구매하는 것이다. 반면에 ‘보급형 전기차’를 지향하는 EV3는 초점이 다르다. 오히려 기존의 전기차 시장에 관심이 없다. 니로 EV나 EV6 같은 시판 전기차의 경쟁자가 아니라, 셀토스나 코나, XM3 같은 소형 SUV 시장 자체를 점유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

차세대 모빌리티의 청사진을 그리는 현대차 그룹의 입장에서는 중국 전기차의 물량공세보다 무서운 게 전기차 시장 자체의 회의론이다. 곧 기아는 스스로 전기차의 인식 개선과 시장 개척을 자체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보급형 전기차는 양날의 검일 수 있다. 대중들의 진입 가격을 낮추면서도 기대 수준을 높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차 효과 이후에도 높은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고,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기아 EV3의 디자인을 분석해 본다. 니로 EV와 다르게 시작부터 전기차로 기획된 EV3는 기존의 포트폴리오와 유사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공유할 수 있었다.

첫인상은 기아의 대형 전기 SUV ‘EV9’과 거의 유사하다.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스타 맵 시그니처’ 라이팅과 수직형 헤드램프로 패밀리룩을 공유한 것이다. 이 수직형 헤드 램프를 중심으로 한 스타일링은 기아의 RV 라인업 전반에 걸쳐 적용되었다. 플래그십이라 볼 수 있는 EV9부터 레이까지, 앞으로는 세단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차체가 조금 더 크고 웅장해 보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양 끝에 배치된 수직형 DRL이 차폭을 강조하면서도, 또 전고가 높아 보이게 만든다. 특히 EV3가 속한 소형 SUV 포지션에서 그 이점이 돋보일 수 있다. 소비자는 ‘소형차’가 아닌 ‘SUV’를 바라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기아의 디자인 철학은 ‘오퍼짓 유나이티드’라고 한다.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 복잡한 표현이지만 대조적인 형태와 강렬한 조형으로 인상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다. 세부적으로 5가지 속성을 제시하는데, EV3는 ‘이유 있는 즐거운 경험’을 테마로 설정했다. EV9이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을 주제로 했던 걸 떠올리면, 보다 대중적이고 젊은 감각을 의도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도는 사선형으로 꺾인 후드 파팅라인에 반영된 것 같다. 이 선을 EV9처럼 수평형으로 마감했다면 보다 단단한 바위 같은 인상이 느껴졌겠지만, 쐐기 형태로 깎으면서 감성적이고 날렵한 실루엣으로 바뀌었다.

전기차답게 라디에이터 그릴은 축소된다. 보닛 하단부 DRL을 연결하는 검은색 띠는 분할선에 의해 생기는 이질감을 하나의 디자인 요소처럼 승화시켰다. 자세히 보면 그 윤곽이 기아의 타이거 노즈 그릴을 형상화한다. 기본 디자인은 범퍼까지 개구부를 최소화했다. 라디에이터 그릴이 거의 범퍼 최하단에 배치되어 있는데, 상단부와 면의 대비를 주면서 볼륨감을 개선했다. 제일 하단부 스커트는 블랙 하이그로시 처리한다. 덕분에 짧게 끊긴듯해 보이는 범퍼는 경쾌한 인상을 추구한다. 반면 GT 라인은 범퍼 밑부분을 강조하는 색상 처리가 특징이며, 그릴 면적을 넓어 보이게 유도하여 자동차 고유의 스포티함과 무게감을 우선시했다.

측면 디자인은 더욱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혼합하여 ‘이유 있는 즐거운 경험’을 설명한다. 우선 SUV라는 관점에서 두꺼운 휠 아치를 굉장히 두껍게 마감했다. 그리고 윤곽선을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마감하면서 더욱 크고 단단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직선 형태의 휠 아치를 따라 강조되는 웨이스트 라인이 매력적이다. 양각의 면을 최대한 넓히면서 소형차치고 볼륨감이 정말 뛰어난 편이다. 그렇듯 벨트라인을 기점으로 차체 하부는 단단함과 부피감이 돋보이는 반면, 그린 하우스는 낮은 경사의 A 필러와 낮아지는 루프라인으로 역동성을 조성했다. 덕분에 쿠페형 SUV처럼 C필러와 리어 글래스 면적이 축소되었다.

디자인을 보다 상세히 살펴본다. 뒤로 갈수록 옆 유리가 줄어드는 프로필을 위해 1열 창 위치를 A필러보다 낮추고, 그 간극을 사이드미러로 자연스럽게 채웠다. 또 플로팅 루프 스타일을 위해 C필러에 가니시를 부착하는데, 자연스럽게 스포일러와 테일램프로 연결되며 완성도를 높인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특유의 웨이스트 라인을 살리기 위해 리어 도어 핸들도 C필러에 통합했다. 1열 도어는 히든타입 도어 캐치를 택했다. 도어 하단부 로커패널을 장식하는 가니시는 사다리꼴 형태로 또 한 번 휠 아치를 강조해 준다. 반대로 루프를 장식하는 루프랙까지, 두꺼운 면을 강조하면서도 밋밋할 겨를이 없는 스타일 기법이 이유 있는 즐거운 경험이 아닐까 싶다.

리어 쿼터 뷰는 그야말로 EV9의 축소판이다. ‘Y’자 형태로 뻗어있는 테일램프가 똑같다. 이 디자인도 전면 DRL처럼 패밀리룩으로 활용되는 은하수 그래픽 같다. 대신 폼팩터 자체가 EV9보다 쐐기 형태에 가깝다 보니, 전체적인 볼륨감이 더욱 살아나는 모양이다. 특히 C 필러 측 LED 그래픽을 제일 짧게 구현하여 공격적인 스탠스를 유도했다. 트렁크 리드는 면의 대비를 활용하여 입체감을 살렸고, 범퍼는 전면부 디자인과 비슷한 윤곽선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특히 기본 사양은 리플렉터를 수직으로 세워 기능미를 추구했고, GT 라인은 하단부에 일자로 배치하여 무게감을 더한다.

인테리어에는 선반형 대시보드를 채택했다. 12.3인치 병렬 와이드 스크린과 최신 소프트웨어로 인터페이스를 구축한다. 기어 레버는 칼럼식, 각종 버튼이나 에어벤트 등 디자인 요소들은 큰 특징 없이 직관적으로 배치된다. 하지만 다양한 친환경 소재와 색상, 조명 등을 활용해 모던한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스티어링 휠을 투톤 컬러로 구성한 점이 고급스러우며, 비대칭형 엠블럼으로 개성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좁은 부피의 센터 콘솔이나 다소 커 보이는 스티어링 휠은 이 차가 소형차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대신 계단식 센터 콘솔 구성으로 수납 능력을 개선하고, 또 슬라이드 방식의 미니 테이블을 배치하여 활용성을 더했다.

미래 자동차에 가까워질수록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기술 역량이 강조되는 법이다. 이미 전용 플랫폼 전기차의 양산으로 실내 디자인의 중요성은 점차 흐려져 가는 듯하다. 특히 대중차 시장에서는 기능 확장과 원가 절감 등의 명목으로 많은 기능들을 대화면 터치 디스플레이로 통합시키는 추세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EV3의 디자인은 적절한 아날로그 감성과 최신화된 디지털 운영체제로 접점을 잘 찾아간 듯하다. 그리고 소형 SUV라는 관점에서 셀토스보다 짧은 전장과 대비되는 넓은 휠베이스는 이 차가 EV 전용 플랫폼으로 개발되었다는 효과를 증빙한다.

기아 EV3가 보급형 전기차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갖고 싶은 차’를 의도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할게 있다. ‘거부감이 없는 차’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하는 EV3는 다양한 국가의 양산차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미 포화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 내연기관 기반의 소형 SUV 들과 다르게, EV3는 전기 기반이라는 사실 하나로 일반적이지 않다. 극명히 구분될 수 있는 시장 반응을 앞두고, 도전적인 디자인을 택한다면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기아의 EV3는 딱히 특징적이지 않고 모난 곳이 없는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받아들여졌다.

표준형이나 GT 라인이 모두 자극적인 외모가 아니고, 너무 밋밋하지도 않다. 그러면서 최신의 ‘기아’스러운 느낌이 분명했다. 고유의 패밀리룩을 뒤따르기도 하면서, 신생 차종이기 때문에 더욱 브랜드의 감성을 제약 없이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존 기아 EV시리즈의 절제미와 고급감을 잘 살려낸 디자인이라 결론 내릴 수 있겠다. 항상 디자인의 정답은 없지만 실패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외적으로 느껴지는 결점은 없어 보이며, 빠른 속도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유현태
사진 출처: 기아

 

 

유현태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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