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게 답이라고?

얼마전 ‘관영방송’ KBS에서 수요 증가에 미치지 못하는 전기차 인프라의 확대에 저속충전이 중요한 방법일 것임을 보도한 바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소리인데, 거의 6년 동안 정부 정책이 지주식/벽부형 레벨 2 보급과 급속충전기 보급 등 관제 사업 처럼 이루어지며, 폭발하는 충전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것이 아닐지 싶다.

 

출처 : 전기차 충전, 느려서 문제인데 “느린 게 답”이라고요?
2035년부터 내연기관車 퇴출? 이르면 2035년부터
휘발유차와 디젤차를 더 이상 구입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지난달 ‘내연기관車 퇴출’ 을 사실상 공식화했습니다. 

n.news.naver.com

 

전기차 충전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레벨 1 – 코드셋을 이용한 저속 충전 (~16A), 콘센트에 꽂는 것이다.
레벨 2 – 통상적으로 7kW ~ 11kW 정도의 속도로, 32A 전류를 이용한 충전인데 교류 전력을 차량에 우리 나라에서 완속 충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레벨 3 – 400V 또는 그 이상의 직류를 공급하는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 급속 충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기존 인프라를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레벨 1인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차 보급 정책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상용 솔루션이 활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치적이 되지 못하여 그랬을 수도 있어 보인다.

 

레벨 1 충전 방식의 장점

하지만 거주지에서 아주 많은 사람이 밤마다 충전을 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충전기를 놓고 충전이 종료될 때 마다 빠르게 차를 빼 줘야만 효과적인 운영이 가능한 레벨 2나 3에 비해 레벨 1은 여러가지 장점들이 존재한다. 본 블로그에서 여러번 언급하였던 것이지만 여기에 또 정리해본다.

1. 적은 그리드 부담과 높은 친환경성
급속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수전을 해 오고 공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기당 50kW, 때로는 100kW 에 가까운 전력을 소모하기 때문인데, 50kW 면 아파트 15가구가 피크로 사용하는 전력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800V 초급속 이런 것은 350kW, 100가구 어치의 전기를 충전기 하나가 끌어간다.

이렇게 급속 충전기가 설치된다 하더라도 이들은 주로 새벽시간에 열심히 활용되지는 못한다. 차를 대고 충전기를 연결하고 이를 해제하고 차를 빼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급속 충전기는 전력 피크 시간에 주로 활용된다. 따라서 전력 피크 시간에 발전소에서 가스나 석탄을 더 때도록 하는 전력 수요 증가의 요인이 된다 (반 환경성).

​반대로, 12A 정도를 사용하는 레벨 1 충전은 별다른 수전 설비의 증설 없이도 야간에 순차적으로 많은 차량이 충전을 할 수가 있다. 글쓴이가 거주하는 2000세대의 아파트에 120여대의 전기차(PHEV포함)가 있지만 – 5년간 1대에서 120대로 매우 빠르게 늘어났다 – 아직까지는 별다른 전기 관련 설비 증설 없이 레벨 1 파워큐브로 유지가 되고 있다. 느리기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밤새 충전을 해야 하고, 따라서 그리드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심야의, 탄소 배출이 적은 전기를 활용할 수 밖에 없어서 전기차의 원래 의도에 잘 부합하는 방식이다.

2. 경제성
레벨 2라고 하더라도 수전 및 충전 설비를 설치해야 하고, 레벨 3은 레벨 2의 비용에 0이 하나 더 붙는 수준이 된다. 결국에 이 비용은 세금으로 보조해 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전기차 유저가 충전 요금에 섞어서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대용량 전기를 인입하다 보니 기본요금이 상당하게 되는데, 이 또한 점차 할인 혜택이 사라지고 있다. 나아가 DC 방식의 급속 충전기는 SMPS 고장 등에 의한 유지 보수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레벨 1은 통신 모듈이 붙은 충전 케이블 하나면 된다. 자연스럽게 단위 전력량당 충전 비용이 저렴하게 된다.

3. 수요 탄력성
레벨 3나 2는 충전기 대수당 일정 수준의 수요에 도달하는 순간 ‘충전 대기’ 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기존의 전기차 충전 수요-공급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삶의 패턴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점(잘 때와 밥 먹는 때가 비슷하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많고, 개개의 설비가 산술적으로 공급 가능한 전력량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가정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충전소에서 충전하고 싶은 상황에는 남도 충전을 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잠재적 충전 대기 상황은 유저에게 스트레스를 초래하게 되고, 이 때문에 아무리 대용량 배터리의 차량을 구입하더라도 유저는 안심이 되질 않게 된다.

​반대로 레벨 1은 자는 동안에 느리게, 때로는 전력을 순차적으로 분배하면서 충전을 해 주기 때문에. 전기차가 몇대 없는 초기에도 별다른 비용의 부담 없이 시스템을 만들 수가 있고, 반대로 전기차가 늘어나더라도 어느 선 까지는 전기 설비의 증설 없이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충전했을까?
실제 데이터로 보는 저속 충전

글쓴이는 5년간 레벨 1을 주로 이용해 왔지만,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레벨 1을 활용하여 전기차를 운용하는지가 궁금하여 파워큐브 본사에 문의를 하여 보았고, 다음과 같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평균 월사용량
228 kW
월 평균 충전회수
5.7시간
시간당 평균 충전용량
2.5kW
플러그 꼽아 놓은 시간 100시간 중에서
실제 충전된 시간 비율
57%
주당 평균 충전회수
3.81회
총 사용고객
회원 10,633명
태그 설치 아파트 단지수
7,118개 APT단지

 

대략 전비를 6 km/kWh 정도로 가정하면 월 1300 km 정도를 주행 하는 것으로 보이고, 국내 승용차 평균 일 주행거리 40km 정도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5.7시간 동안 충전하였으니 한번에 평균적으로 14.25 kWh 를 충전한 셈이다. 이 자료만으로도 퇴근 후의 경부하 시간을 주로 활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해당 자료는 올해 8월 기준이었으므로, 지금은 이 자료 보다 사용자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글쓴이의 게으름으로 이제서야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원시자료는 없으므로 사용량의 분포나 지역별 특성 등 추가적 분석을 시도하지는 못하였다는 점에 한계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꽤 많은 전기차 유저가 저속 충전을 나름대로 잘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내의 전체 전기차 대수는 10만대가 넘게 되었으니 (5월말 기준 10만 6099대), 약 10% 정도는 파워큐브를 활용하는 셈이다.

 

저속충전의 전망

유럽의 규제환경 변화로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의 배터리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가 올해 크게 늘고 있고, 내년에는 이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정부의 충전 인프라에서 고려되지 않아던, 배터리가 크지 않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이 폭증하였을 떄에 충분한 저속 충전 인프라가 없다면 끊임없이 충튀(충전이 끝난 차를 빼주지 않는 것)나 도전(전기를 훔치는 것) 등에 대한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향후 한전의 전기차 충전 기본요금 할인제도 또한 축소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완속이나 급속 충전 인프라는 비용 부담이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문제들을 현실적, 합리적으로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거주지나 직장서의 저속 충전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이다.이를 통하여 전기차의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모두 제고할 수 있다.

Disclosure : 글쓴이는 파워큐브와 유의미한 이해상충이 없고, 이 글 또한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의견임을 밝힌다.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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