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일드 하이브리드 이야기

오늘은 최근 타본 독일차를 바탕으로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볼보를 비롯한 유럽 브랜드들이 최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추가한 파워트레인을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요. 부드럽다, 가볍다라는 뜻의 ‘마일드’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하이브리드’에 비해 가벼운 수준에서 배터리를 함께 사용하는 차량들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이 시스템을 적용해서 내놓은 차량을 직접 타보면서 연비나 친환경성 측면에서도 유리함이 있겠지만 내연기관이 필요한 시점에 추가적인 출력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주행성능 측면에서도 의미가 꽤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테슬라를 필두로 순수전기차의 시대가 열리는 것 같지만 기존의 하이브리드차(HEV)에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그리고 마일드 하이브리드까지 ‘전기’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차들이 등장하면서 파워트레인이 다채로워지는 것 같기도 한데요. 말 그대로 ‘베스트셀링’ 모델로 국내에서 워낙 관심이 높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E-클래스를 타본 느낌 그리고 여기에 장착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대해 가볍게 한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뭐길래?

요즘 자동차 업계에서는 꽤 자주 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마일드 하이브리드’입니다. 앞으로 디젤 엔진을 퇴출시키겠다고 밝힌 볼보에서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은 B엔진이 ‘표준 파워트레인’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에서도 가솔린과 디젤 엔진에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함께 적용한 모델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전기배터리와 모터를 함께 쓰는 파워트레인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하이브리드차(HEV)’라는 분류로 대표돼 왔는데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에 이어 마일드 하이브리드까지 등장하면서 이 ‘하이브리드’라는 단어 자체도 점점 복잡해지는 듯 합니다.

기존 하이브리드차의 최강자라면 역시 일본 도요타입니다. ‘프리우스’라는 모델로 이 시장을 선점했고 여전히 강력합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사실 만만치 않습니다. 도요타의 특허를 잘 피하면서 빠르게 기술을 개발했고 맞먹는다를 넘어서 더 좋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많은 현대차 임직원들이 차를 구매할 때 상당히 선호하는 모델이 바로 그랜저나 쏘나타의 하이브리드 모델이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이런저런 여건을 감안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차량 선택이라는 얘기를 하는 분들을 적지 않게 봤는데요. 가격, 성능, 연비, 각종 혜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꽤 좋은 절충점이라는 생각으로 보였습니다.

 

 

이 하이브리드차에는 꽤 큰 용량의 배터리와 상당한 출력의 모터가 들어갑니다. 회생제동 등을 통해서 축적한 전기 에너지로 모터를 구동하는데 중·저속에서는 내연기관을 가동하지 않고 전기모터로만 구동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도심 주행을 중심으로 상당한 수준의 연비 개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기본적으로 전기모터로만 차를 굴리는 경우는 없거나 상당히 제한적으로 있다(브랜드에 따라서 조금씩 다릅니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에어컨을 비롯한 차량의 전자장비를 구동하는데 쓰이는 12V 배터리(흔히 말하는 ‘빠떼리’)와는 별개로 48V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이용하는데요. 내연기관의 동력을 기본으로 활용하되 이 전기 동력을 ‘적재적소’에 이용하겠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일반적인 하이브리드차는 수백볼트 이상의 전압을 이용하는 반면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48V 전압은 유럽 등에서 별도의 안전·법률 이슈 없이 기존의 차에서 쓸 수 있는 최고 전압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내연기관차에서 별다른 부담 없이, 차량의 구조를 별로 바꾸지도 않고, 덧붙여서 써도 되는 시스템인 셈입니다.

 

 

친환경성 높이면서
출력·성능에 ‘쏠쏠’

브랜드마다 이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실제로 이용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 보입니다. 대체로는 차가 출발할 때 부족한 힘을 보태준다거나 저속에서 미리 엔진을 끌 수 있게 해준다거나 하는 소소한 측면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연기관이 취약할 수 있는 순간에 큰 힘은 아니지만 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겠습니다. 48V의 넉넉한 전력으로 터보차저를 보다 원활하게 제어해 반응 속도를 높이는 활용법이 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어찌됐건 제동 과정에서 손실되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축적해서 다시 쓰는 것이기 때문에 효율과 친환경성이라는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그 폭이 그리 크지는 않아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볼보 등에서 속속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한 차량들을 내놓고 있는데요. 대부분 유럽계 브랜드들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연비 향상과 환경 효과 측면에서도 무시 못 할 의미가 있지만 사실 차량의 주행성능 측면에서 도움을 주는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연비와 배출 가스 측면에서 전기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기에 더해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한 차량의 성능에도 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내연기관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전기모터를 이용하면서 큰 힘이 필요할 때는 출력 측면에서 도움을 받고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주행을 만들어내는데도 기여한다는 설명입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장착한
신형 ‘E-클래스’ 타보니

이런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제가 최근 시승한 차량은 최근 메르세데스벤츠의 ‘E 350 4MATIC AMG 라인’ 모델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국내에 새롭게 출시한 10세대 E-클래스 페이스 리프트 모델의 라인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1991cc의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 299마력을 내는데 48볼트 전기 시스템인 ‘EQ 부스트(EQ Boost)’가 22마력의 힘을 더해준다는 점입니다.

리튬이온전지를 이용하는 이 EQ 부스트가 바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인데요. 역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이용하는 볼보의 B엔진이 “출발 가속과 재시동 시 엔진 출력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약 14마력의 추가적인 출력을 지원해 더욱 민첩한 주행 성능을 제공한다”고 설명하는 것과 비교하면 동일한 전압으로 더 큰 힘을 낸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이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인지 ‘E 350 4MATIC AMG 라인’을 시승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속력과 가속질감이었습니다. 4기통 가솔린 엔진을 활용해서 내는 최고 299마력의 힘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4기통 엔진이 가지는 한계도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차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가속력과 가속질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강렬했고 또 부드러웠습니다. 성능에 우선을 둔 스포츠 모드를 설정하고 저속에서 고속으로, 그리고 조금 더 깊숙하게 가속페달을 밟아서 추가로 속도를 높일 때, 기대 이상으로 매끄럽게 속도계가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적으로 EQ 부스트의 역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출발, 저속, 고속 등 전 영역에 걸쳐서 내연기관차의 기본적인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고르고 지속적으로 뒤를 받쳐주는 가속질감이 다이나믹하면서도 즐거운 주행을 이끌어줬습니다.

가속페달을 밟고 나서 실제로 가속될 때까지의 ‘틈’이 아쉬울 때가 있는 내연기관차의 단점을 꽤 채워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서도 EQ 부스트가 전기에너지를 이용해서 추가적으로 밀어주는 힘이 전반적인 주행성능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사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기존의 내연기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별도의 시스템을 장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비싼 배터리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추가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런 점은 비교적 높은 가격대의 차량에서 친환경성과 성능을 동시에 잡으려는 선택이 마일드 하이브리드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지 않고 있는 현대·기아차도 유럽 시장에서는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에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존 하이브리드차의 전반적인 세팅이 연비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적용한 차량은 꼭 연비뿐만 아니라 성능적인 측면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자동차 업계의 분석도 귀담아 들어볼만 합니다.

 

 

더 똑똑해진 신형 E-클래스

신형 E-클래스 자체에 대한 시승 소감을 곁들이자면 도심과 자유로 등을 주행하면서 E-클래스가 똑똑해져서 돌아왔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플러스’라고 이름 붙여진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에서는 정체 상황을 감안해서 비교적 장시간 정차했다가도 앞 차가 출발하면 따라서 출발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스티어링 휠에서는 림 앞면과 뒷면에 각각 센서 패드를 탑재한 ‘정전식 핸즈-오프’ 감지 기능을 확대했는데요.

꾹꾹 눌러서가 아니라 가벼운 움직임으로 차량 내 각종 보조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ADAS를 활용할 때 따로 힘을 주지 않고 스티어링 휠을 잡고만 있어도 차가 그 점을 인식하는 기술도 적용이 됐습니다. 다만, 스티어링 휠의 모습 자체는 메르세데세스벤츠 특유의 금속성 질감이 줄어들고 다소 덜 고급스러워 보이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수입차 시승에서 내비게이션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인데요. 증강현실(AR)이 적용된 내비게이션은 운전에 꽤 도움을 줬습니다. 갈림길 등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전방을 보여주면서 그래픽으로 가상의 주행 라인을 함께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E 350 4MATIC AMG 라인’ 모델에 적용된 증강현신 내비게이션.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서는 신형 E-클래스의 서스펜션 등에서 기존보다 스포티함을 강조한 세팅이 이뤄졌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세데스벤츠 고유의 편안한 주행감성과 부드러운 핸들링 같은 특징은 여전히 잘 살아 있는 느낌입니다.

 

 

친환경차와 친환경 주행 사이에서…

이번에 시승을 하면서는 조금 엉뚱한 생각도 해봤습니다. 친환경차를 타는 것도 좋지만 운전자 각자가 친환경 주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인데요. HEV와 PHEV 그리고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까지… 하이브리드 개념이 적용된 차들은 대부분 계기판을 통해 현재의 주행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연비를 달성하고 있고 일반적인 내연기관차보다 얼마나 더 친환경적으로 주행하고 있는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전기 주행 모드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얼마나 연료를 아껴 쓰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요. 브레이크를 밟을 때 회생제동이 가능하고 주행 모드 선택에 따라 이래저래 연료 소모량을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지는 하이브리드 계열 차량들의 특징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E 350 4MATIC AMG 라인’ 모델의 디지털 계기판. 오른쪽과 가운데 화면을 통해 EQ 부스트 충전·사용 상황과 연비 효율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디젤 내연기관차를 타면서 ‘연비’ 정도만 보던 평소의 주행과 달리 계속 이런 것들이 눈에 띄다보니 ‘시승이 아니라 평소에 이런 차를 타게 된다면 어떻게 연비를 높일지를 고민하게 되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차를 비롯한 이른바 ‘친환경차’가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여전히 도로 위의 차량 대부분은 내연기관차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각자가 조금씩만 더 친환경적인 주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연료 소모와 탄소 배출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짧은 시간 시승차를 타면서는 아무래도 좀 거친 운전을 통해 차를 알아보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저는 제 차로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켜서 그 고속도로의 제한속도에 딱 맞춘 뒤에 2차로 정속주행을 하는 운전을 즐기고 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ADAS 기술 덕에 운전대를 잘 잡고 옆 차선에서 끼어드는 차 정도를 신경 쓰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운전을 너무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우선 가장 좋고 중형 SUV(2.0L 디젤 엔진)이면서 L당 20킬로미터에 육박(때로는 20킬로미터 이상)하는 연비가 화면에 찍힌다는 점도 뿌듯합니다.

최근 유난히 ‘순수한 내연기관차’가 아닌 차를 타볼 기회가 많아서 해본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규정을 준수하는 정속주행이 안전과 연비 양쪽 모두에서 중요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겠습니다. 최근에 출시되는 신차는 같은 모델 안에서 배기량이나 출력이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계열의 파워트레인이 적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배터리와 모터’라는 새로운 옵션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완성차 브랜드들이 친환경성과 퍼포먼스라는, 상반되지만 또 결코 놓칠 수 없는 두 요소를 함께 잡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옵션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시승은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느낌이지만 이런 선택에 따라 꽤 달라지는 ‘운전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재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기차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하이브리드 계열’ 차량들을 틈틈이 타보면서 더 느껴지는 것들을 앞으로도 또 소개해 보겠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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