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자동차 산업은 내수 시장의 환경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극단적으로 승전국이었던 영국이나 미국은 과시적인 자동차를 다수 생산했고,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에는 효율적인 자동차들이 소재했을 것이다. 특히 북미 시장에는 무분별한 신차 개발로 소비자들의 차량 교체를 부추기는 슬로니즘 전략이 통하기도 했다. 물론 자동차의 공학적인 발전속도가 뒤쳐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수 차례의 오일쇼크와 경제 대공황으로 합리적인 자동차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다.
그렇듯 과거의 미국차는 연비가 안좋다는 인식이 있었다. 대형차나 고배기량 자동차의 판매량부터가 높았다. 이를 마냥 과시적 소비문화로 비판할 수는 없다. 미국은 영토가 굉장히 넓고 유전을 보유한 국가다보니 실용성에 유리한 대형 SUV의 수요가 높아지는게 당연하다. 단, 21세기에 접어들며 생긴 문제점은 다르다. 단지 개인의 유지환경만을 고려하여 고효율 자동차를 선택하는게 아니다. 녹색성장을 위한 국가적인 과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앞으로의 존속을 위해 저탄소 자동차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22년에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 4xe가 한국 시장에 출시되었다. 여기서 4XE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의미한다. 비교적 국내에서는 생소한 파워트레인이다. 특히 공인연비가 8.8km/l로 흔히 떠올리는 친환경 자동차의 기준에 현저히 미달된다는 의문점이 있다. 하지만 PHEV는 앞서 설명한 미국의 자동차 문화에 가장 친화적인 저탄소 자동차다. 이따금 주행거리가 길어 충전시간이 부담되지만, 평소에는 무공해 주행을 통해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유지비도 절감할 수 있다. 탁월한 출력까지 고배기량 SUV들의 훌륭한 대체재로 기대된다.
시승 차량은 지프 그랜드 체로키 4XE 2.0 PHEV Limited 트림이다. 엔진은 단일이며, 옵션은 두 단계의 트림으로 구성된다. 리미티드는 엔트리 모델로 상위트림 대비 에어 서스펜션, 매킨토시 오디오, HUD, 서라운드 뷰, 마사지 시트 등 각종 주행및 편의장비와 실내및 외관 패키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가격 격차가 2천 만원이상 벌어지는 만큼 구성 차이가 큰 편인데, 리미티드 트림도 그 자체로 프리미엄 오디오, 선루프, 디지털 클러스터 등 충분한 편의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랜드 체로키4xe의 디자인은 1년 앞서 출시된 그랜드 체로키 L 모델과 유사하다. 7대륙을 상징하는 7슬롯 그릴과 사각형의 헤드램프로 듬직한 인상을 만들었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을 역슬렌트 형상으로 배치하며 보닛 끝부분을 강조하고 차체는 더욱 웅장하고 위엄있어 보인다. 범퍼에도 꽤나 큰 면적의 에어인테이크가 위치하고 두꺼운 스키드 플레이트 덕분에 듬직함이 엿보인다. 어떻게보면 리미티드 트림만의 매력이다. 상위 트림은 바디 컬러 클래딩이 적용되면서 차체 하단부까지 전부 차체와 동일한 색상이 적용된다.
측면 디자인은 클래식 SUV의 고풍스러운 감각이 느껴진다. 최근 크로스오버들을 보면 승용차처럼 부드럽고 날렵한 차체 윤곽선을 지향하는 반면, 그랜드 체로키는 각이 살아있고 필러가 솟아있는 전통적인 다목적 자동차의 실루엣을 연출했다. 특히 후륜구동 SUV인 만큼 짧은 프런트 오버행과 기다란 보닛에서 느껴지는 멋스러운 비례 감각이 매력적이다. A필러에서 시작하여 D필러를 감싸는 크롬 몰딩은 그랜드 체로키만의 프로파일 캐릭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5스포크 타입 휠은 평범한 디자인으로 단단한 분위기가 전달된다.
뒷모습은 수평선이 강조되어 있다. 롱바디 모델과는 다르게 테일라이트를 연결하는 장식물이 덧붙여져 있기도 하다. 테일램프의 그래픽은 슬림한 ‘ㅡ’자 형태로 역시 차체 폭이 넓어보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시승차량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만큼 JEEP 엠블럼에는 푸른색이 감돈다. 두꺼운 플라스틱 가니시로 마감된 리어범퍼는 별다른 특징이 느껴지진 않는다. 가니시 몰딩과 리플렉터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특정 디자인 요소가 인상깊다기 보다는 차체 크기의 묵직함과 디자인 밸런스가 훌륭한 모습이다.
그랜드체로키는 풀체인지 이후 인테리어 디자인이 굉장히 고급스러워졌다. 엔트리 트림이지만 나파가죽과 우드트림, 하이그로시 패널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인터페이스는 디지털 클러스터와 대화면 디스플레이로 구성했고, 주요 기능들은 물리 버튼으로 구현하여 직관성도 마음에 든다. 변속기는 다이얼 방식으로 변경했는데 회전하고 복귀되는 방식이 아니라서 사용감이 꽤나 자연스럽다. 새롭게 디자인된 스티어링 휠의 형상도 세련된 실내 분위기에 일조한다. 오디오는 알파인, 각종 패널 사이엔 단색 무드램프도 내장되어 있다.
2열 공간은 여타 대형 SUV만큼 여유롭다. 기본 4륜구동이다보니 센터터널이 살짝 솟아있더라도 차고 자체가 높다보니 크게 불편을 주진 않는다. 편의장비는 열선 시트와 리클라이닝, 암레스트 정도가 있다.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파노라마 선루프로 부터 전해지는 2열 개방감이다. 당연히 트렁크 공간도 여유롭고 시트 폴딩시 평탄화도 되어있다. 전동 트렁크 버튼이 왼쪽 D필러 부근에 위치하는데 적응되면 꽤나 편리하다. 차박을 배려한 것이다. 매트 아래에는 스페어 타이어가 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수준의 고급화와 디지털화가 느껴졌다.
그랜드 체로키 4XE는 PHEV로 시동을 건다기 보다는 전원을 키는 느낌이다. 여타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충전 잔량에 따라 엔진이 개입하기도 하며 이는 그랜드체로키도 마찬가지지만, PHEV는 외부 전원으로 완속 충전이 가능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약 15Kwh 용량의 배터리 셀이 내장되며 완충시 33km의 거리를 전기로만 주행할 수 있다. 드라이브 모드와 별개로 하이브리드 모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오직 전기 주행인 ‘ELECTRIC’, 모터로 발전하여 충전하는 ‘E-SAVE’, 그리고 주행연비를 최대화 하는 ‘HYBRID’ 세가지 모드가 있다.
이 ELECTRIC 모드는 33km의 거리를 무공해로 주행할 수 있다.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보다도 가감속이 잦은 시내주행에서 일반 고출력 내연기관은 한자리수 초반대의 연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랜드 체로키의 전기주행 모드는 오히려 가감속을 통한 회생제동으로 전비 효율이 높아진다. 떼문에 출퇴근이나 근교 여행 등 가까운 거리는 전기 모드를 통해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크다. E-세이브 모드에서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배터리를 충전하며, 하이브리드에서는 10km/h 초반대의 평균연비를 기록한다.
어디까지나 효율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내용이다. 실제 그랜드 체로키 4xe는 친환경성을 떠나 주행 특성에서도 마음에 드는점이 많았다. 우선 모터를 활용하니 승차감이 부드럽고 정숙하다. 전기주행시 엔진의 진동과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예 없고, 훌륭한 차음성능과 오디오 덕분에 막히는 길에서도 편안했다. 그리고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가 함께 작동될 때 느껴지는 파워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먼저 설명하자면 스텔란티스 그룹이 사용하는 4XE시스템에는 흔히 MHEV라 하는 저전압 구동 모터와 HEV 고출력 구동모터, 즉 두 종류의 모터가 결합됩니다.
이 두 종류의 모터는 각각 145마력, 63마력의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또, 2.0L 직렬 4기통 엔진에는 싱글터보까지 맞물려 최대출력 272Hp, 토크는 40.8Kg.m의 힘을 지닌다. 합산 최고 출력은 대략 375 마력에 달한다. 이는 일반 V6 자연흡기 유닛을 훨씬 상회하는 성능이다. 변속기는 자동 8단, 제로백은 약 7초 초반에 머문다. 공차중량이 2.5톤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즉답적인 응답성이라 이해할 수 있다. 주행시 엔진이 개입할 때 충격이나 소음도 크지 않았다. 오디오를 틀고있다면 신경써야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면서 스포츠 모드로 전환시키면 꽤나 카랑카랑한 사운드가 유입된다. 당연히 고배기량 엔진의 감성은 따라잡기 어렵지만, 실제 전달되는 가속감이나 펀치력은 4XE가 우세하기도 하다. 이번 그랜드 체로키에서 가장 만족했던 부분은 핸들링 감각이다. 에어서스펜션이 빠지고 코일 스프링이 접목되면서, 다소 단단하게 조율된 승차감은 오히려 즐거웠다. 차체 무게가 무거워서인지 방지턱이나 요철등 심한 충격은 부드럽게 흡수해주고, 급격한 코너링이나 차선변경에서는 차체 흔들림 없이 탄탄하게 지지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와인딩 코스에서도 웬만한 승용차보다 롤링이 억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랜드 체로키의 높은 지상고를 감안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승차감이 안정적이고 매끄러웠다. 휠베이스가 길지만 선회 능력도 훌륭하다. 다소 묵직한 스티어링 휠을 감으면 딱 의도대로 움직이는 뉴트럴 타입이다. 그랜드 체로키는 FCA 그룹의 차세대 후륜구동 아키텍처 조르지오 플랫폼으로 전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했으며, 알루미늄 적용으로 차체 강성은 늘리면서 로워암 질량은 낮추었다고 한다. 그런 이론적인 설명보다도 실제 체감되는 승차감의 차이가 확실했다.
시승내내 불쾌한 변속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전자식 AWD시스템을 믿고 험한 길도 자유롭게 다녀보았다. 쿼드라 트랙 시스템을 통한 험로주파 능력은 사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라면 어디든 주행할 수 있다. T맵을 기본 탑재한 인포테인먼트도 강점이다. HUD는 빠져있지만 디지털 클러스터의 네비게이션 안내로 쉽게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차간거리와 차선유지 등 기본적인 ADAS 장비도 충분하다. 전후방 센서의 정확도도 훌륭했기 때문에 높은 지상고와 차체 크기로 인한 부담감도 크지 않았다. 옵션 구성이 참 합리적이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4xe 리미티드를 시승했다. 미국 자동차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게된 계기다. 특히 지프는 정통성을 고수하는 SUV 전문 브랜드지만, 그랜드 체로키 4XE는 정말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하고 있다. 외관 디자인은 정통파 SUV의 DNA를 계승하지만 실제 승차감은 독일제 크로스오버처럼 탄탄했다. 또, 공기저항을 포기한듯 터프한 외모와 실용성을 챙겼는데도 ‘전기’모드를 통한 무공해 주행은 환경보호에 대한 가능성을 키운다. 더구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파워풀한 성능까지, 매력이 끊이질 않는 SUV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