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kWh 배터리, 300km에 미치지 못하는 1회 충전 주행거리. 시작 가격은 5290만 원. 오는 9월 출시를 앞두고 사전 계약을 시작한 지프 어벤저 얘기입니다. 지프는 하루 평균 주행 거리가 30km 라면 한 달에 2~3번만 충전해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고속 충전도 지원하는데 24분 정도면 배터리 잔량 20%에서 80%까지 채울 수 있다네요. 모터 최고 출력 115kW, 최대 토크 270Nm을 발휘한다는 이 전기차, 스펙은 차치하더라도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지프의 지난해 판매량은 5000대 밑으로 떨어지며 2022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에 지프가 속한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브랜드 강화를 위해 가격 안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상시 할인을 지양하겠다는 거죠. 스텔란티스 산하의 또 다른 브랜드 푸조는 판매량이 3000대 아래에서 정체되면서 (구형이긴 하지만) 전기차를 1000만 원 넘게 할인하던데. 어필이 되는 상품성을 갖춘 여러 소형 전기차가 하나둘씩 나오는 지금, 어벤저가 브랜드 특유의 오프로더 DNA를 담아냈다고 하더라도 경쟁자들을 압도하긴 쉽지 않아 보이는데, 만약 판매가 부진한다면 가격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아님 자신 있다는 걸까요? 어벤저, 유럽에선 인기 있다고 하던데.

론지튜드 5,290만 원, 알티튜드 5,640만 원

어벤저는 지프 최초의 순수 전기차입니다. 2022년 파리 모터쇼에서 데뷔했고 지난해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 바 있습니다. 수상 이력이 화려한데요. ‘2023 유럽 올해의 차(European Car of the Year)’를 비롯해 ‘세계 여성 자동차 기자가 뽑은 2023 올해의 차(WWCOTY)’에서 ‘최고의 패밀리 SUV(Best Family SUV)’로 선정됐었죠.

어벤저는 브랜드 고유의 아이코닉한 디자인 요소를 재해석했다는 게 제조사의 설명입니다. 박시 스타일(Boxy Style)의 차체와 각진 세븐-슬롯 그릴, ‘제리 캔(Jerry Can, 휴대용 연료통)’ 디자인이 적용된 LED 테일 램프 같은 것들이요. 전기차라서 측면과 전면 그릴에는 충전 플러그 형상의 파란색 레터링 ‘e’가 붙어 있어요. 전면 센서 부근엔 어벤저가 디자인된 이탈리아 토리노를 가리키는 나침반‘이스터 에그(Easter egg)’도 있다네요.

유럽에선 돈을 더 내야 달아주는 블랙 컬러 루프가 한국에선 알티튜드의 기본 품목으로 포함된다고 합니다. 기본이 아닌 상위 트림에선 투톤 보디가 기본인 거죠. 외관 컬러는 총 7가지. 이중 레이크(에메랄드)는 어벤저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신규 색상입니다.

지프는 어벤저의 실내 공간을 강조합니다. 실내 수납공간이 34L라면서요. 그리고 트렁크는 321L로 동급 대비 우수한 수준이라네요. 핸즈프리 파워 리프트 게이트는 모든 트림에서 기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픈 글라스 선루프가 있어 답답하지 않을 거라는데 과연.

풀-스피드 전방 충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 보행자/자전거 감지 긴급 제동 시스템, 차선 중앙 유지 시스템, 스톱 앤 고 기능이 포함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지대/후방 교행 모니터링 시스템 등 나름 부족함 없는 안전 사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알티튜드 트림에는 교통 표지판 인식 시스템이 더해진다고 합니다. ADAS는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 잡은 10.25인치 컬러 디스플레이에서 설정이 가능하다네요.

파크센스(ParkSense) 후방 센서 주차 보조 시스템과 파크뷰(ParkView) 후방 카메라는 모든 트림에 기본으로 탑재됩니다. 안전벨트 프리텐셔너도 기본이고요. 알티튜드 트림에는 전/측 센서 주차 보조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에어백은 전면, 사이드 커튼, 전면 사이드 시트 등 총 6개가 장착됩니다.

지프에 따르면 어벤저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통합형 유커넥트 5가 적용되어 내장/외장 기기와 연결을 간편하게 만든다고 하네요. 무선 애플 카플레이랑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하고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에서 마이 유커넥트 지프 앱을 활용해 원격 제어가 가능하고 충전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어쨌든 지프

어벤저는 e-CMP 플랫폼을 기반으로 합니다. 차의 성능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이루는 특정한 요소들 간의 완벽한 통합을 위해 개발됐다는 푸조의 그 플랫폼 맞습니다. 길이 4084mm, 너비 1776mm, 높이 1535mm으로 치수만 보면 현대 베뉴와 비슷합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제외하고 전기차가 전무했던 지프에 처음으로 등장한 전기차, 어벤저. 지프는 브랜드만의 오프로더 본능은 변함없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게 셀렉-터레인(Selec-Terrain®). 일종의 지형 설정 시스템인데 주행 환경에 따라 차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거죠. 이를테면 에코/일반/스포츠/샌드/머드/스노 모드로. 그리고 하나 더, 힐 디스턴트 컨트롤(HDC). 이건 내리막 주행 제어 장치인데요, 내리막길 주행 중 속도 상승을 막는 등 속도 제어가 가능하고, 저속 영역에선 오프로드 주행을 지원합니다.

지상고 200mm를 비롯해 동급 대비 가장 넓은 진입각(20°), 브레이크 오버각(20°), 이탈각(32°)으로 지프의 여타 모델과 마찬가지로 오프로드 주행에 무리가 없다는 어벤저. 하부 보호를 위한 컬러 스키드 플레이트와 615mm의 시트 높이에서 확보되는 시야는 SUV에 걸맞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배터리 실드도 있고요.

팀킬 방지를 위한 교통정리?

니로 EV뿐만 아니라 출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캐스퍼 일렉트릭과 EV3 그리고 곧 출시될 볼보의 EX30까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세그먼트에 출사표를 던진 지프 어벤저. 제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에서 생산하는 일부 브랜드와 달리 유럽(폴란드)에서 만들어 ‘Made in Europe’은 어필될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에서 만드는 만큼 환율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책정된 가격은 비싸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10.25인치 디지털 풀 컬러 디스플레이, 레벨 2 자율주행, 교통 표지판 인식 시스템 등 어벤저의 사양은 경쟁 모델에 비해 돋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290km대의 주행 가능 거리는 누군가에겐 부족해 보일 수도 있고요.

일각에선 지프 어벤저 때문에 같은 스텔란티스 소속인 푸조 전기차의 부분변경 모델 출시가 미루어졌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벤저는 현재 국내 시판 중인 푸조의 전기차와 성능이 비슷한(약간 더 나은) 수준인데 더 비쌉니다. 올해 전기차 국고 보조금을 다 받을 수 있는 가격 상한선은 5500만 원 미만인데 이를 고려해 5500만 원 근처에서 푸조의 신형 모델 가격을 책정한 뒤, 어벤저를 선보이면 여러 면에서 개선된 신형에 비해 부족한데 더 비싼 가성비 떨어지는 모델로 전락할지도 모르니까요.

방실 스텔란티스코리아 대표는 어벤저를 두고 “지프가 전동화를 향한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모델”로 말했었는데요. 최근 성적이 저조한 상황을 타개할 모델로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어벤저는 브랜드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이는데 로다주(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마블 어벤저스에 복귀한 마당에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어요.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아요.

글 이순민
사진 STELLANTIS MEDIA WEBSITE, J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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