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 전기차로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면?
제레미 클락슨이 영국 BBC에서 탑기어를 진행하던 것도 이제는 참 오래전의 기억으로 남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2008년, 로터스 엘리제를 베이스로 제작되었던 테슬라 로드스터를 리뷰한 적이 있다. 성능은 나쁘지 않았지만 55마일 정도를 주행하니 배터리가 소진되어서 실질적인 사용이 가능할 지 의문시된다는 내용이었다 (아래 링크의 4:55정도를 보시면 된다). 당시 탑기어 트랙의 랩타임은 911 GT3과 같은 1분 27초였다.
이후, 그란투리스모와 같은 게임을 통해서 (이것도 거의 10년쯤 전인 것 같다) 테슬라 모델 S와 같은 전기차량을 게임에서 제공되는 뉘르부르크링에 올려서 즐겨 보았는데, 아무래도 게임이다 보니 너무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거동에서는 무게감이 느껴지는지라 아주 재미는 없는 기분이었다.
전기차 보유 지도 벌써
만 6년이 되어간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던 중, 아이오닉 전기차를 보유한 지도 벌써 만 6년이 거의 채워졌음을 깨닫는다. 중년을 지나는 차데모 아이오닉을 매달 800km 정도씩 계속 사용하며 느끼는 감정은, 내 발에 아주 잘 맞춰진 낡은 구두 같다는 것. 요즘 나오는 차량들에 비해 전폭이 좁고 (1820mm) 0-60km 구간에서의 급가속에 능하여 서울 안에서는 상당히 민첩한 주행이 가능하고, 웬만한 주행 상황에서는 시내에서 A에서 B로 이동하는 데 이 차보다 더 빠르고 편안하게 사람과 화물을 이동시켜줄 차량이 흔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내 공간은 또 어떤가. 연습실로 사용하기에도 부족함이 없고, 웬만한 화물을 처리해내는 데도 문제가 없다.
대체 얼마나 되어야
만족할 것인가?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더 거대한 전폭과 전장, 전고의 차량을 보유해야만 끝끝내 만족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아파트 주차장을 빼곡히 매운 차량들은 전폭이 2m 전후를 자랑하는 대형 SUV들이다. 출력은 또 어떤가. 이제 내연차는 300마력은 어디에 명함을 내밀지도 못한다.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도 그렇다. 이제는 100kWh씩 싣고 다니는데, 그러면서도 만족들을 할 줄을 모르는 모습이다.
이렇게 현실 세계를 살아 가면서 한동안 트랙과 모터스포츠에 대한 생각은 완전 머릿속을 떠나 있었으나, 어느날 퇴근길에 문득 아이오닉 전기차로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졌다. 아이오닉 5나 테슬라 모델 3과 같은 비교적 최신 차량들은 국내에서 서킷 주행을 해 보았다는 경험담을 여기저기서 접할 수 있지만, 배터리가 30kWh도 되지 않는 구형 아이오닉 전기차로 뉘르부르크링이라니. 2008년의 테슬라 로드스터 처럼 금세 배터리가 소진되어 버릴까? 아니면 토요타의 3세대 프리우스 기반 플러그인 처럼 매우 천천히 달려야 하는 걸까?
프리우스 플러그인이 뉘르부르크링을 주행하면서,
아주 약간의 연료만 필요했다는 사진
다행이 정답이
여기에 있었다!
다행이 정답은 유투브에 있었다. 구오닉을 뉘르에 올려준 이 애호가분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여유있게 주행을 하면서 12분 정도의 랩 타임을 보인다. 휠/타이어만 바꾸고 좀 타이트하게 몰아 붙이면 10분 30초 내에는 부담없이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씩씩하게 카루셀을 지나는
구형 아이오닉 전기차의 대시캠 사진
비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느꼈던 것은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매우 저출력(88kW)이지만 무게 중심이 낮고 경량(1445kg)인 차량으로,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뉘르부르크링의 라인을 즐기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겠다는 내 짐작과도 같다.
평소 뉘르부르크링 같은 곳은 일반인이라면 저출력의 FF 차량으로 타이어를 끌어 가면서 라인을 즐기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고출력의 차량의 경우에는 차량의 잠재력을 안전하게 다 사용하려면 많은 경험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는 많은 운전자들의 모습들을 보아도, 재미있는 주행을 위해서는 굳이 초고성능의 차량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꽤 괜찮은 선택
그런 면에서 구형 아이오닉 전기차는 전비가 우수하여 탄소 발자국도 적고, 회생제동을 적극 사용할 수 있어 브레이크 패드 교환의 부담도 별로 없으면서 트랙의 즐길 요소는 대부분 다 누릴 수 있는 꽤 괜찮은 선택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 몇대 중고로 사서 대여업체를 운영해도 괜찮겠다는 망상을 해보기도 한다. 비디오를 올린 운전자의 전비는 대략 3.5km/kWh 였다고 하는데, 보통 뉘르부르크링 취미주행에서 내연차들이 보이는 전비가 4~5km/l 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고저차가 심하고 중등도의 가감속이 반복되는 트랙의 노드슐라이페 트랙의 특성상 아이오닉 전기차는 상당한 효율성의 이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울을 돌아다니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목적은?
결론적으로(직접 경험해 본 것이 아니라서 송구하지만), 견인 걱정 없이, 구형 아이오닉 전기차로 뉘르부르크링을 세바퀴 정도는 돌 수 있으며 그 과정은 의외로 그리 따분해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서울을 돌아다니는 저 많은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목적은 무엇인가가 여전히 남는 질문이다. 그들의 소리가 아름다운 것이라면, 트럼본 렛슨을 받으면 될 것을…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