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산에서 캐스퍼 일렉트릭이 공개됐습니다. 두 달 전쯤 캐스퍼를 주문할 때 캐스퍼 전기차가 곧 나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전기차를 산다면 그 차는 푸조 e-208 일 거라는 굳은 결심마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이젠 경차는 아니지만) 이게 된다고?

전장과 휠베이스가 각각 23cm, 18cm 늘어나면서 실내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전체적인 비율이 무너지지 않으면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지만 작은 차를 선호하는 편이라 큰 감흥은 없습니다.

진짜 부러운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라이팅, 디스플레이, 스티어링 휠. 제일 높은 등급을 사도 넣어주지 않던 풀 LED 헤드 램프가 프로젝션 타입으로. LED 보조 제동등과 후방 안개등 그리고 후진등까지.

변화의 폭이 큰 디스플레이에도 눈이 갑니다. 4.2인치 클러스터와 8인치 내비게이션은 10.25인치로 커졌습니다. 보다 넓은 스크린에서 구현되는 이미지와 정보는 다양하겠죠. 스티어링 휠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더 뉴 아이오닉 5와 같은 걸로요. 천연가죽 소재부터 림의 볼륨과 버튼 그리고 디지털 픽셀 라이트까지 모두 다요.

지능형 안전 기술과 편의 사양도 가져오고 싶을 만큼 좋아졌습니다. 전방 충돌 방지의 범위가 차량, 보행자, 자전거 탑승자, 정면 대향차로 확대되고 고속 도로 주행 보조랑 전진 출차 중 후측방 충돌 방지 보조도 지원합니다. 디지털 키 2 터치를 비롯해서 서라운드 뷰, 후측방 모니터, 전동식 파킹 브레이크도 함께.

물론 이런 변화들이 전부 기본 품목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어딥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컬러. 새롭게 추가된 다섯 개 외관 색상 중에 더스크 블루 매트 컬러가 잘 뽑힌 것 같아요. 무광이라 관리가 쉽지 않겠지만 윗급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고급진 색깔이라 보자마자 꽂혔습니다. 사실 이것 말고도 부러운 게 더 많은데 하나하나 나열하면 진짜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할게요. (다행히 전동 시트는 캐스퍼 일렉트릭에도 없더라고요.)

CASPER Electric vs. e-208

캐스퍼 일렉트릭에는 49kWh 급 NCM(니켈, 코발트, 망간) 배터리가 탑재됩니다.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는 315km. 120kW 급 충전기로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30분입니다. 겨울철 주행 거리를 고려해 히트 펌프도 적용됐고, 220V 전원을 공급하는 실내외 V2L도 있죠. 가격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한 캐스퍼의 매력을 전기차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나쁘지 않은 성능과 구성인 것 같아요.

차체에 걸맞은 적절한 비율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과 탁월한 색감까지. 작은 차를 좋아한다면 푸조 e-208을 이상적인 외관을 갖춘 모델로 뽑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3D 홀로그램 스크린, 원격 제어(MyPeugeot),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유지 보조 기능, 하이빔 어시스트, 액티브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링 등 첨단 기능도 부족한 편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km에 미치지 못하는 1회 주행 가능 거리는 구매를 망설이게 했습니다. 실제로 주행을 하면 인증받은 수치보다 더 멀리 갈 수 있겠지만 좀 불편할 것 같았어요. 푸조가 전기차에 최적화된 플랫폼 모듈이라고 말하는 e-CMP에 기반하는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50km를 달릴 수 있을 만큼 충전하는 데 60분 넘게 걸린다고 하니, 보조금 외에 받을 수 있는 프로모션 혜택이 크더라도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부분 변경을 거친 신형은 여러모로 한층 나아졌다고 하는데 국내 출시가 계속 미뤄지고 있네요.

아무튼 캐스퍼 일렉트릭은 현재 판매 중인 구형 e-208보다 더 멀리 가고 충전 속도도 빠릅니다. 안전 및 편의 사양은 말할 것도 없죠. 다만e-208보다 덜 스타일리시하고 파워풀하다는 거.

그래서 너로 정했다?

보다 두꺼워진 도어 글라스와 이중 실링, 언더커버뿐만 아니라 모터 감속기 주변에도 흡차음재를 적용하면서 소음 차단에 공을 들인 캐스퍼 일렉트릭. 보디 핫스탬핑 포인트도 늘려 차체 강성을 확보하고 주요 섀시도 강화하면서 주행성 향상에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앞 차와의 거리와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유지하고 정차 제어까지 가능한 스마트 회생제동 시스템을 비롯해 공기 유입을 제어하는 셔터를 적용한 프런트 그릴과 가속 페달을 잘못 밟았을 때 가속 제한 및 긴급 제동으로 사고를 예방하는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 장치까지, 전기차로서 효율과 안전도 챙겼죠.

이제 관건은 가격이 아닐까 싶어요. 에너지 밀도와 성능이 뒤처지는 LEP 배터리를 탑재한 레이 EV(배터리 용량 35.2kWh, 1회 충전 주행 거리 205km)의 실 구매 가격은 2000만 원 초반입니다. 더 나은 평가를 받는 배터리를 달고 여러 안전 및 편의 사양을 꽉꽉 눌러 담은 캐스퍼 일렉트릭의 가격은 이보다는 비싸겠죠. 가격이 공개된 이후에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소형 전기차에 대한 반가움과 설렘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기대해 보겠습니다. 세컨드가 아닌 퍼스트 카로요.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아요.

글 이순민
사진 HK PR CENTER, CASPER, PEUGE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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