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가 경증환자라면, 부품업체는 생명 위태 중증환자”
미국 수출량이 많은 한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A사는 최근 한 달 동안 주 2일 근무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의 해외 수출 물량이 큰 폭으로 줄어 어쩔 수 없이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며 “완성차 업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증 환자라면 납품업체는 생명이 위태로운 중증 환자”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출 충격이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업계의 타격이 유독 심하다.
자동차 수출 급감하며 협력업체 연쇄 타격
1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승용차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4% 급감했다. 이달 초 장기간의 완성차 공장 휴업에다 해외 판매 감소가 겹치면서 수출 실적 악화로 이어진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해외에서 극심한 판매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해외에서의 자동차 판매가 지난해 4월에 비해 70.4% 줄어들면서 8만8000여 대에 그쳤다. 기아자동차(―54.9%), 르노삼성자동차(―72.5%), 쌍용자동차(―67.4%) 등도 줄줄이 심각한 수준의 판매 감소를 보였다. 지난달 국내 완성차 5개사의 해외 판매량은 19만6800대로 지난해 4월에 비해 62.6% 줄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해외 판매가 너무 줄어 특근 등으로 생산을 늘릴 필요도 없었다. 수출 차를 주로 생산하는 라인 중에는 연휴 이후까지 휴업을 이어간 곳도 있다”고 말했다.
수출 악화는 고스란히 자동차 부품업체로 이전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최근 부품업체 96곳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감소한 곳이 절반에 달했다. 또 93.8%가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내린 사회적 봉쇄 조치가 점차 풀리고 있어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도 5월 중하순부터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큰 폭의 판매 증가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통신기기 등 ‘효자상품’도 실적 급락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주력 산업들도 5월 들어 수출 실적이 일제히 급감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이달 1∼10일 반도체(―17.8%), 무선통신기기(―35.9%), 석유제품(―75.6%) 등의 수출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수출 계약부터 인도까지 약 2년이 걸리는 선박(55.0%)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효자 상품’ 실적이 급락한 것이다. 지난해 반도체와 무선통신기기, 석유제품, 자동차 수출액은 1917억 달러로 전체 수출(5424억 달러)의 약 35% 수준이다.
이들 품목의 수출이 감소한 건 미국 유럽 등 주요국 경제가 코로나19로 사실상 멈춰 서며 내수가 급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선통신기기와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의 수출이 줄며 반도체 등 연관 산업의 수출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제품은 지난해 5월 배럴당 60∼70달러 선이던 유가가 최근 20달러대로 폭락하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들 업종의 향후 전망이 나아질지도 불투명하다. 삼성전자는 최근 1분기(1∼3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반도체 시장 전망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추이와 이에 따른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계획 변동에 따라 시장 상황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도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하는 2분기(4∼6월) 글로벌 수요 감소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바닥을 쳤다”는 긍정론과 “회복을 논하기 이르다”는 관측이 맞서고 있어 시장 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이 회복되려면 다른 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계속 줄어야 하는데 아직 많은 나라에서 증가하고 있다”며 “최종재뿐 아니라 중간재, 원자재도 타격을 받고 있어 수출 부진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도형 dodo@donga.com·
서동일 / 세종=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