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의 프리미엄 전기차 GV60을 장기간 시승했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글로벌 미래 전략을 수립하면서 브랜드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한다. 신흥시장으로 주목받는 전기차 산업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엔트리 전기차를 양산할 것이다. 이후 아이오닉 모델과 EV 라인, 그리고 제네시스의 순서로 급이 나뉘는 브랜딩 전략을 구축중이다. 특히 고부가가치에 속하는 제네시스가 탄소 중립의 선구자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024년, 아직까지 제네시스 브랜드의 EV 포트폴리오가 완전하지는 않다. 오히려 타 브랜드들 중에서도 가장 소극적인 라인업을 꾸리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제네시스 브랜드에 출시된 전기 차종은 총 세가지, 그중에 두 가지 차종이 내연기관 플랫폼을 변형시킨 ‘전동화’ 전기자동차다. 오직 순수전기차를 위한 플랫폼으로 개발된 차종은 이번 글의 주인공 ‘GV60’이 유일하다. 향후 제네시스 G70의 후속 차량과 플래그십 SUV GV90이 고성능 EV 플랫폼 ‘EM’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루머가 펴졌었는데, 확인된 바로는 GV90 만 실제 테스트 뮬이 매스컴에 보도된 이력이 있다. 최소 2024년 상반기까지는 제네시스를 대표하는 전기차 전용 모델이 GV60 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왜 GV60이었는지 동기는 명확하다. 우선 플랫폼 공용을 통한 개발비 절감이 가능했다.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줬던 현대자동차 그룹의 아이오닉 5와 EV6의 E-GMP 플랫폼이다. 이 차종들과 동일한 이유겠지만 크로스오버라는 장르 자체가 세계시장에서 많은 수요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하물며 해치백이 점유했던 유럽시장까지도 소형 SUV가 잠식하는 과정에 있다. 전기차의 경우에는 배터리 팩을 탑재하며 차고가 높아진다. 그런 구조적인 특성까지도 SUV와 해치백의 성격을 섞은 크로스오버의 양산을 촉구했다.
하지만 판매량과 생산량이 많은 편은 아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때문에 GV60을 실패한 자동차라고 평가하는 매스컴 보도도 있다. 본인도 차량을 직접 타보기 전까지는 비슷한 생각이 있었다. 우선 디자인에 대한 차별화를 떠나, 스타일링이 아쉬웠다. 타 E-GMP 플랫폼 적용차량과 비율이 거의 유사하고, 프리미엄 브랜드 다운 격식을 느껴보기 어렵다. 또한 GV60은 세그먼트 자체가 하이-엔드로 밀고 가기엔 부적절한 등급인데, 밑으로 아이오닉 5와 EV6의 품질이 많이 상향된 바 있다.
즉, 굳이 부가가치를 지불하고 구매하기에는 주 수요층의 시각에서 EV6나 아이오닉 5의 상위 트림을 선택하는 게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또 GV60과 비슷한 가격대에는 고품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많고, 또 환경에 따라 충전의 불편함을 감내할 바에는 보다 가격이 저렴한 SUV가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결과적으로 전기차의 장점을 바란다면 EV6와 아이오닉 5로 수요가 분산되고, 고급 전기차를 원한다면 수입차종까지 겹쳐져 커버리지가 넓어진다. 아울러 고급스러운 SUV를 찾는 경우라면 GV60의 선택률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GV60의 존재감 자체도 여타 제네시스 SUV 모델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다. 그러던 중 뒤늦게 마주한 비크블랙 컬러의 GV60은 꽤나 산뜻한 첫인상이었다. GV60의 디자인에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아무래도 검은색은 차체의 파팅라인이 감춰지는 느낌이 있고, 또 복잡했던 형태의 에어커튼과 그릴, 그리고 블랙베젤이 적용된 헤드램프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인상이다. 그래서 GV60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바라보게 되니 나름 입체적인 곡선미가 엿보인다. 노즈 끝부분을 강조한 굴곡과 프런트 펜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전조등의 MLA그래픽이 은은한 멋을 더한다.
측면과 후면도 훨씬 나아 보인다. A필러가 앞으로 밀려있는 비율 자체는 전통적인 고급차의 비율이 아니지만, 경사가 낮은 A필러와 곡선형의 루프라인은 나름 쿠페 스타일의 감각을 담았다. 플러시 타입 도어 핸들은 더욱 매끄러운 프로필을 만들어 주는데, 빛을 반사하는 숄더 라인과 C필러의 크롬 액세서리는 좋은 디테일 소재가 된다. 이분할 구조의 뒷유리, 그리고 스포일러와 테일램프도 전체적인 실루엣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원래는 디자인 요소의 과잉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올블랙 색상에서는 정말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GV60의 디자인 자체가 나름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전기차로써 어쩔 수 없는 제약은 소비자가 받아들일수 있을지 판단하면 되는 부분일 것이다. 시승 차량은 엔트리 모델인 ‘스탠다드’ 트림에 속했는데도 19인치 크기의 휠은 스탠스를 개선하는데 효과적이다. 차체 하부를 덮는 클래딩 컬러도 순수 플라스틱 질감이 아니라 약간의 건메탈 색감이 느껴져서 자칫 저렴해 보일 수 있는 분위기를 피했다. 실물로 보면은 C세그먼트 치고는 전폭이 넓은 편이라 나름대로의 무게감도 느껴졌다.
그나마 인테리어 디자인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자질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와이드 스크린은 타 차종도 비슷하게 설치되어 있지만, ‘구’를 주제로 한 도어캐치나 스티어링 휠 등 각종 디자인요소, 추가 옵션 없이도 소재나 마감품질이 확실히 고급스러운 편이다. 그리고 전기차의 엔진 시동 상황을 알려주는 ‘크리스탈 스피어’가 회전하는 모습은 제네시스 전기차만의 각별한 감성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제네시스만을 위해 따로 개발되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중후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물론 전기차의 공간 활용성을 놓치지도 않았다.
2열 공간도 여유롭다. 레그룸부터 길기도 하며, 어느 정도 쿠페 형상을 띄는 루프지만 등받이 각도가 많이 기울어질 수 있어서 크게 답답함을 보이지 않았다. 트렁크에는 2분할이지만 창을 넓게 뚫어놔서 전체적으로 개방된 분위기를 주기도 한다. 시승차량에는 운전석에만 에르고 모션 시트가 적용되고, 1열 릴렉션 컴포트 시트, 2열 선 커튼 등이 포함되는 ‘컨비니언스 패키지 1’, 그리고 서라운드 뷰 카메라와 증강현실 네비게이션을 지원하는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패키지 1’가 적용되어 있었다.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나 편의 사양은 더욱 다양하다.
실내 색상명은 그레이 화이트 컬러인데 역시 외관 디자인처럼 색상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다. 별도 디자인 셀렉션 옵션이 추가되지 않더라도 화사한 분위기가 참 인상 깊었다. 다만 실내 디자인이나 공간 역시 EV6나 아이오닉 5도 마찬가지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아이오닉 5는 개방적인 공간을 강조했고, EV6는 기존 자동차처럼 운전자 중심의 레이아웃을 보여준 바 있는데, GV60은 그 중간 즈음에 있는 디자인 성격을 보인다. 아무렴 기본 옵션 자체는 GV60이 가격대가 있는 만큼 풍부한 편이다.
시승차량은 스탠다드 트림이다. 흥미로운 점은 GV60은 스탠다드의 배터리 용량이 타 E-GMP 모델의 롱레인지와 같다. 전력량 77.3Kwh, 기본 사양인 후륜구동의 경우 451Km의 항속거리를 보인다. AWD의 경우 출력과 안정성이 상향되면서 또 ‘퍼포먼스’ 등급에는 제로백 4초대의 고출력 모터가 탑재된다. 정말 기본 사양인 후륜구동 모델만 해도 제로백은 7초대에 머무니 가감속이 수월하다. 항속거리는 기본 모델이 가장 길고 충전시간은 동일하다. 제원 상으로는 80%까지 초급속 충전으로 20분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시점에서 브랜드별 전기차는 구성의 차이일 뿐 ‘합리성’을 원하면 아이오닉 시리즈, 고성능을 원하면 아이오닉 5 ‘N’을 선택하면 되는 시장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GV60이 정말 선택받을 가치가 있는 차종인지가 궁금했던 것이기도 했다. 시승해 보고 가장 놀랐던 점은 승차감이다. 솔직히 웬만한 자동차들은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의 주행성과 승차감을 보인다고 느꼈다. 근데 GV60은 긴 시간 여운이 남을 정도로 훌륭한 승차감을 보여주었다. 공차중량이 2톤에 육박하는 전기차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안정적이었다.
보통 전기차는 중량이 무겁고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낮다는 측면에서 안정성이 상향된다고 한다. 대신 노면 요철이나 방지턱 등에서 수직 방향 돌림힘, 즉 모멘트에 의한 흔들림이 더욱 심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차체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막기 위해 스프링과 댐퍼의 강성 계수를 높게 설정하는 편이다. 노면 충격을 받아들여도 차체가 크게 동요하지 않고 금방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문제는 그런 노면 충격이 운전자를 비롯한 탑승객에게 곧 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운전자는 안정적이라고 느껴도 승차감은 부드럽지 않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상급 전기자동차들은 감쇠력을 실시간으로 조율하기 좋은 에어스프링 서스펜션을 사용한다. 하지만 E-GMP 플랫폼 전기차는 에어스프링을 구현할 수 있는 구조적 여건도, 환경도 안 된다. 결국 GV60도 코일 스프링과 유압식 쇽업쇼버를 활용하여 승차감을 조율한 것인데 승차감이 너무나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불안하지도 않다. 노면은 끈끈하게 붙잡고 주행하는 감각인데, 사소한 요철이나 매끄러운 방지턱은 충격을 흡수하면서 접지력을 유지해 준다. 일부로 방지턱을 넘어보고 싶을 정도로 승차감이 만족스러웠다.
전기차는 기본적으로 소음이 없고 가속감이 매끄럽다. 그리고 현대차가 적용하는 스마트 회생제동 시스템은 브레이크 대신 앞차와의 차간거리에 비례하여 감속이 걸리고, 그만큼 에너지도 충전되기 때문에 운전도 편하고 전비도 향상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전기차의 효용과 함께 GV60의 훌륭한 승차감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니 차량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타 프리미엄 브랜드의 코일 스프링 방식의 전기차보다도 훨씬 완성도가 높은 섀시 밸런스를 보였고, GV60을 선택하는 소비자분들의 이유를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제네시스 GV60은 ‘승차감’의 측면에서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접근법이 어떻든 제네시스를 표현하는 디자인과 실내 품질에서도 확실한 메리트가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외관 디자인이나 비율이 다소 아쉽다고 느낀 바 있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GV60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크로스오버가 맞다. G’V’라인업 중에서는 엔트리 모델에 해당하는 만큼, 추후 제네시스가 공개할 em플랫폼 기반의 전기차도 많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