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잘 탄다고 자평한다. 스마트폰 뱅킹 할 줄 아니까 그거면 됐다. 한데 자동차 쪽에서는 고집을 심하게 부렸다. 예를 들어 자동변속기 혐오 때문에 불과 지난 해까지 수동변속기 차를 꼭 갖고 있었다. 현재 보유중인 차량의 배기량을 모두 더하면 1만cc에 이른다. 심지어 전부 가솔린 모델이다. 자동차 업계 친환경 트렌드와 벗어난 채 살아간다.
그동안 전기차는커녕 하이브리드카조차 구입한 적 없다. 그런 것들을 시승차로 접할 때는 마치 무선청소기를 타고 다니는 것 같았다. 거부감이 들었다. 비위 상했다. 나는 가스 페달을 밟았는데 모터 도는 소리가 난다? 내가 아는 자동차는 이런 게 아니었다.
난 자동차 마니아가 맞다. 대신 편식이 무척 심한 내연기관주의자다. 이런 걸 답답하게 여긴 지인이 있다. 그도 나처럼 V8 마니아다. 6.2L 엔진의 쉐보레 카마로를 탄다. 그러다가 딱 2주 전에 현대 코나 전기차를 ‘기추’했다. 원래 6162cc였던 SNS 대화명을 이제 ‘EV’로 바꾸기까지 했다. 사자가 돌연 채식주의를 선언한 것 같았다. 그럴 리는 없으니까 결국 미친 게 확실해 보였다. 그의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코나 EV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는 “너무 만족스럽다”며 역시나 본인이 제정신이 아님을 입증했다.
‘대화명 EV’가 미쳤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자 묘한 배신감과 박탈감에 사로잡혔다. 동료를 하나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파쟁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이윽고 이런 제안을 했다.
“차를 일주일 빌려줄 테니 실컷 타 봐.
마침 ‘누구나 보험’을 들어 놨거든.
타 보면 내가 왜 이러는지 알 거야”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우리 사이의 거대한 산> 너머로 약간의 신뢰가 남아 있었기에. 이에 따라 코나 EV가 일주일 동안 내 차고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일이면 다시 대화명 EV에게 돌아갈 운명이다. 일주일 동안 500km 탔다. 배터리는 90% 충전된 상태에서 받았다. 중간에 연료 다 써서 한 번 충전했다. 지금 마음은 어떠냐고? 그의 말이 반쯤 맞았다. 분명 매력 있었다. 돌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살짝 든다. 물론 반대의 면에서 실망스런 점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 건지, 골수 내연기관 마니아가 전기차 일주일 쓰면서 느낀 장점 5개와 단점 5개를 소개한다.
먼저 단점 다섯 가지.
단점 1) 내연기관이 오토매틱이라면 전기차는 쿼츠
배기음 좋은 대배기량 차는 악기와 같다. 내 오른발 움직임에 따라 음악을 울린다. 8개의 실린더가 협곡을 이루며 내는 엔진음과 기름진 배기음이 뒤섞이면 오페라가 따로 없다. 꼭 8기통이 아니어도 좋다. 6기통의 비단을 스치는 듯한 소리도 매력적이다. 4기통마저도 특유의 진동과 소음이 사랑스럽다. 엔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상상하며 들으면 더욱 기분 좋다.
반면 전기차는 그런 맛이 전무하다. 바람 가르는 소리와 타이어 마찰음이 날 뿐이다. 감속할 때는 지하철 들어올 때 나는 고주파음이 실내를 채운다. 혹자는 소음이 없다고 좋아할 테지만 자동차 마니아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다. 시계에 빗대면 전기차는 쿼츠이고 내연기관은 오토매틱 같다. 쿼츠가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걸 잘 알지만 오토매틱에 마음이 끌린다. 카마니아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2) 전기차는 후륜구동이 낫겠음
코나 일렉트릭은 전륜구동이다. 가속 페달을 콱하고 밟으면 토크스티어가 생긴다. 선회하느라 운전대가 돌아간 상태, 즉 안쪽 앞바퀴와 바깥쪽 앞바퀴가 그리는 원의 크기가 다를 때는 더욱 곤란해진다. 한 세대 전의 터보 달린 스웨덴차처럼 토크스티어가 심하다. 후륜구동화하되 트랙션 콘트롤과 자세제어를 섬세하게(보수적으로) 만드는 편이 낫겠다.
운동성도 나쁘다. 코나 가솔린 모델에 비해 몸놀림이 매우 둔중하다. 특히 좌우 방향으로 연속 동작을 하면 몸을 추스르지 못한다. 크게 뒤뚱거린다. 타이어부터 금방 무너지기 일쑤였다. 코나 일렉트릭의 무게는 1,685kg로 코나 가솔린보다 300kg 넘게 무겁다. 그런데 그 무게에 어울리는 하체 세팅을 갖추지 못했다. 코나 전기차의 운동성이 나쁘다는 사실이 이슈화되지 않은 게 재미있다. 전기차 오너들은 달리기 성능이나 운동성에 관심이 없나?
3) 번호판이 촌스러움
전기차는 파란색 바탕의 번호판을 단다. 거기에 EV 글자도 써 있고 각종 패턴도 들어간다. 다른 건 다 이해해줄 수 있는데 색깔까지 차별화한 건 영 거슬린다. 붉은 계열의 보디 페인트를 발랐다면 더욱 신경 쓰일 뻔했다. 설령 무채색일지라도 번호판만 유채색이어서 이상하다. 보태어 번호판 가드도 테두리가 두껍고 못생긴 걸 쓴다. 비천공 번호판(볼트 구멍이 없음)으로서 전용 번호판 가드를 쓰는 까닭이다.
4) 유독 어색한 브레이크 페달 감각
코나 일렉트릭은 약한 제동 시(감속도가 낮을 경우) 회생제동으로 물리적인 제동을 대신한다. 그 특정한 감속도를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다른 차들처럼 유압식 브레이크로써 속도를 줄인다. 이런 연유에서 평범한 자동차의 유압식 브레이크 페달 감각과 상당히 다르다. 어떤 때는 초반에 페달 반응이 없다가 일순간 콱하고 감속되고, 또 어떤 때는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멈춘다. 객관적으로 현대/기아의 1세대 하이브리드 브레이크 페달 감각보다 어색하다. 코나 일렉트릭의 운전 감각 면에서 가장 불만이었던 부분이 바로 제동감이었다.
5) 주유소 자동세차가 비쌈
차를 돌려주기 전에 깔끔히 세차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차주는 내게 “손세차 할 필요 없다”고, “터널형 자동세차기에서 한 번 돌려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코나 일렉트릭을 타면서 주유소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주유소 자동세차 할인 혜택도 볼 수 없었던 것. 예를 들어 5만원 이상 주유하면 세차비가 4,000원인 반면 미주유 차량은 원래 가격(1만원)을 고스란히 내야 한다. 자동세차를 만 원이나 내고 하는 건 바보 같은 일. 어쩔 수 없이 손세차 맡겼다. 집에 전기차 한 대 뿐이라면 주유소 자동세차는 어떡해야 할까?
지금부터는 다섯 가지 장점.
단점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들.
장점 1) 빠른 가속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
널리 알려졌듯이 모터는 돌자마자 큰 힘을 낸다. 코나 일렉트릭의 최대토크는 40.3kg?m. 2.0L 디젤 수준의 토크가 저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정지가속과 중속에서의 추월가속이 상당히 빠르다. 설령 그렇다 한들 실제로 내연기관 차보다 가속이 빠른 건 아니다. 예컨대 작정하고 내달리는 G70 2.0T를 추월할 수 없다.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들었던 자잘한 고민이 없어졌다. 이를테면 ‘지금 내가 풀 액셀 한 번하면 기름을 얼마나 쓰게 될까’라든가 쏘고 난 뒤에는 ‘이제 슬슬 쿨링을 해야겠다’는 식의 생각들이 무의미하다. 전기차는 빨리 가고 싶을 때 그냥 가면 된다. 배터리 충전에 따른 전기료가 저렴하고 터보차저를 식힐 일도 없다. 이렇다 보니 그저 가속이 빠른 게 아니라 ‘빠른 가속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다가왔다. 엄청나게 빠르지는 않지만, 빠르게 가는 일을 더욱 자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장점 2) 휠이 언제나 깨끗하다
전기차는 제동 초반에 ‘회생제동’으로써 감속한다. 감속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때서야 브레이크 패드의 물리적인 마찰로 속도를 줄인다. 결국 브레이크 페달을 약하게 밟을 때는 배터리로 에너지를 회수하면서 속도를 내린다. 제동 방식이 이렇기에 브레이크 패드와 디스크 로터를 매우 적게 쓴다. 웬만한 제동은 회생제동으로 소화할 수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브레이크 계통의 소모품 교환 주기가 확 길어진다. 패드를 쓰지 않으니 패드 분진도 적게 나온다. 휠이 늘 깨끗할 수 있는 이유다.
한편 코나 일렉트릭은 운전대 뒤편 패들로써 회생제동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최대인 3단계에 두면 이른바 ‘원-페달’ 주행이 가능하다. 멈추기 직전에만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된다.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제동 계통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 다닐 수 있다.
장점 3) 항상 시동전원을 켜 놓아도 괜찮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자동차의 공회전이 금지되어 있다. 꼭 법적 이슈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공회전에 따른 배기가스는 ‘민폐’다. 이 때문에 필자는 잠깐 주차할 때도 반드시 엔진을 끈다. 특히 지하주차장에서 초기 시동할 때는 탄소화합물 배출이 더욱 많아지므로 공회전을 극히 자제한다. 일종의 강박처럼 10초 이상 공회전시켜야 한다면 엔진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하지만 코나 일렉트릭은 문제될 게 없다. 시동, 아니 전원이 켜져 있어도 발진하지 않는다면 모터가 돌지 않는 까닭이다. 에어컨을 켜든 히터를 켜든 마찬가지다. 이 덕에 처음으로 ‘공회전 방지 강박증’에서 벗어났다. 그게 그렇게 편한 일인 줄 몰랐다. 코나 일렉트릭 탈 때는 편의점을 갈 때도 그냥 전원 켜 놓았다. 다녀와서 차에 다시 타면 엄청 시원했다. 반대의 예로 내연기관 차는 내리기 전에 시동 끄고, 물건 사 와서 다시 시동 걸고, 더워진 차 안이 냉방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장점 4) 여름에 덜 덥다
필자의 AMG GT는 여름에 타기 싫은 차다. 센터 터널 쪽에서 배기열이 느껴진다. 오른쪽 다리가 후끈하다. 뒤 차축에 달린 변속기도 실내를 덥히는 데 일조한다. AMG GT뿐만 아니라 내연기관 자동차들 중에는 실내가 뜨거워지는 차들이 많다. 대개 배기가스 열기가 원인이지만 FR레이아웃 차들은 실내 가까이 있는 변속기 때문에 더욱 덥다.
코나 일렉트릭은 그렇지 않다. 물론 모터도 회전할 때 열을 수반(특히 고회전)하지만 내연기관의 배기온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런 까닭에 요즘 같은 여름에 덜 더웠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겨울에 내연기관의 열기가 히터라는 고마운 존재로 쓰이는 것과 달리 전기차는 반대다. 강제로 열을 만들어 히터를 구현하니 효율이 확 떨어진다. 주행가능거리가 여름에 비해 50km쯤 줄어든다. 전기차와 내연기관 자동차는 서로 다른 계절성 질환을 하나씩 갖는 격이다.
장점 5) 주유소 안 가도 된다
많은 이들이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를 지적한다. 필자와 대화명 EV(코나 EV 차주)는 여기 공감하기 어려웠다. 사는 곳에 전기차 충전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웬만해서는 항상 자리가 있다. 이렇기 때문에 퇴근하면서 충전기 물려 놓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빼도 될 정도였다(원칙적으로는 충전이 끝나면 즉시 차를 빼야 한다).
이 덕에 일주일 동안 주유소를 한 번도 안 갔다. 원래 일주일에 1.5회 정도 주유소를 찾아야만 했다. 특히 필자의 출퇴근용 차는 고급휘발유를 먹기 때문에 주유소 찾는 것도 일이다. 그에 반해 전기차는 거의 항상 완충 상태로 유지됐다. 전기차 덕에 깨달았다. 오랜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불합리한 일이었음을. 주유소 가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이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