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로페시의
사이드 스틱에 대한 단상

복수의 모델이 출시되기 시작할 E-GMP 플랫폼(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이 현대차그룹에 가지는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무엇보다 500km라는 긴 주행가능 거리와 레벨 3의 자율 주행 기능을 포함한 기본 컨셉을 볼 때 향후의 차량들은 근본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국산 전기차에서 유저가 경험할 수 있는 정도를 매우 불연속적으로 뛰어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레벨 2 이상을 타겟으로 하는 자율 주행 기능의 강화는 최근 전동화 차량에서 아주 중요시되는 것인데, 이는 어떤 면에서는 전기차의 가치평가의 기준에 이미 작년부터 상당부분 평준화 되기 시작한 출력이나 배터리 용량 보다는 업체간의 격차가 상당히 존재하는 주행보조 시스템의 선진성과 차량을 이용하는 유저 경험이 앞으로 보다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프로페시 (prophecy) 의 칵핏

 

실제로 최근 중고 전기차 시세를 살펴보면, 주행가능거리나 자동차로서의 성능은 최신 경쟁 모델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ADAS 의 수준이 1-2년 정도만 뒤쳐지는 모델의 경우 (예: 쉐보레 Bolt EV) 매우 큰 가격 하락 폭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만큼 전기차 유저가 상품성 평가에서 주행보조 기능을 중시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전동화 차량이더라도 자동차 운전석을 어떻게 꾸미는지는 ‘앞으로의 운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에 대한 업체의 철학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아이오닉 EV 4년차 유저의 테슬라 모델 3 타본 이야기) 독일의 기존 메이커들은 최신 모델에서도 과거 내연차와 유사한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레이아웃을 보이고 있으며, 반면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능의 우수성을 과시하며 초기부터 디스플레이로 최대한의 기능을 통합하는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는 비교적 최근지도 고전적 배치의 실내를 따르고 있었지만, 작년 말 출시된 그랜저와 금년 공개된 아반떼에서 과거 언급한 것 처럼 – A330 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느낌과 같은 – 플랫 디스플레이 중심의 계기판을 중심으로 많은 부분을 통합적으로 제어, 표시할 수 있는 인테리어 구성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레벨 3의 자율주행 기능이 어느정도 성숙되었을 때에, 향후 전동화 차량의 운전석이 어떻게 변화될 지를 보여준 것이 E-GMP 기반의 컨셉카 프로페시의 사례이다.

 

 

이 그림을 보았을 때,

현대차의 개발자들이 초기 플라이-바이-와이어 (Fly-by-wire) 와 자동화된 운항 시스템을 에어버스가 민항기에 적용한 사례를 분명 상당부분 벤치마크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플라이 바이 와이어?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fly-by-wire)는 항공기 비행, 조종 시스템의 하나로서 직역하면 전선에 의한 비행이란 뜻으로 기계적 제어가 아닌 전기 신호에 의한 제어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비행 조종 시스템은 기계구조와 유압에 의존하여 조종면을 직접 연결하는 방식인데 플라이 바이 와이어는 조종석(Cockpit)에서 조종하는 신호를 컴퓨터가 해석하여 전기적인 신호를 유압 시스템에 제공하면 이것이 조종면을 조종하는 방식이다. 엔진 역시 비행 조종 컴퓨터에 의해 관리된다.

레벨 3 의 자율주행 기능을 바탕으로 실제 자동차를 운행하게 되었을 때, 운전자와 패널 (계기판) 사이의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는 스티어링 휠이 상당한 공간적 제약으로 다가오는데, 이것을 에어버스의 사례 처럼 사이드 스틱으로 뺴게 되면 이 공간적 제약이 사라지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테이블을 뽑아 내서 뭐든지 – 밥을 먹든, 컴퓨터 작업을 하든. 책을 보든 –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점차 운전자가 자동차의 모든것을 조종하는 역할에서 점차 운행을 관리 (oversight) 하는 역할로 변화해 가는 것을 시사한다.

프로페시 컨셉의 스포티한 디자인과 고성능 지향 스펙과는 약간 어울리지 않기도 하는 부분이지만, 운전자의 승객화 추세는 거대한 시대적 추세 (secular trend) 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전동화 차량의 발전과 함께, 차량 실내 공간이 쾌적한 휴게 및 거주 공간의 특성을 점차 더 많이 보유하게 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의문이 드는 점도 있다.

자동차는 요 방향과 가속 (스로틀), 감속 (회생제동 또는 물리 브레이크) 의 조종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동차의 스티어링 휠은 보통 록에서 록 까지 세바퀴 반 돌아갈 수 있다.

그래야 주차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항공기는 조종의 자유도가 자동차와 상당부분 다르다. 사실 사이드 스틱은 에일러론과 엘레베이터(또는 엘러본) 을 조종 하므로, 요 방향 (yaw axis) 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요 방향의 러더는 러더 페달이 담당하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게다가 저속에서는 대형기의 경우 틸러를 이용해서 바퀴의 방향을 조절한다.

 

 

사이드 스틱으로 자동차의 조종 시스템을 어떻게 이질감 없이 번역 (translation) 시킬 수 있을까?

쉽게는 화살표 네개 (키보드에 있는 것처럼) 로 게임을 하듯 축을 배정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조이스틱에 축을 배정해 레이싱 게임을 해보면 힘들기 짝이 없다. 사이드 스틱은 관절의 가용 범위가 좁으므로, 거동이 너무 예민 (fast) 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엔지니어들은 답을 찾아내겠지만,

결국 사이드 스틱이 스티어링 휠을 대체하게 될 때에는 많은 가정과 조건들 (예를 들어 속도와 스틱을 누르는 힘에 따라 바퀴의 움직임이 비 선형적으로 조향 된다거나) 이 필요할 것이다.

주차를 할 때는 별도의 틸러가 필요하도록 설계할 수는 없을테니.. 어떻게 인터페이스를 구현 할는지? 결과적으로 사이드 스틱 기반의 차량은 자동 운전이 디폴트가 되고 수동 개입은 상당히 제한적인 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 제약 때문에, 실제 양산차량에서 구현이 될 가능성은 다소 낮아보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레벨 3 이후의 세계는 실생활 운전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레벨 3 이후가 되어야 신차를 구입하겠다는 몇년간의 내 생각이 더욱 굳건해 지기도 하고 (당장 있는 차를 판매하고픈 제조사들에게는 미안한 부분이지만), 정말 과거부터 ‘미래차’ 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이제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설레기도 한다.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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